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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투수 등판했지만…“野 역할 못 해” 지적 받아
김종인 비대위 체제는 지난 4·15 총선 이후 ‘대안 부재론’ 속에서 출발했다. 총선에서 참패해 궤멸 위기까지 몰렸던 국민의힘은 정치력이 검증된 구원투수로 김 위원장을 영입했다.
김 위원장의 행보는 ‘중도층 확보를 통한 외연 확장’으로 요약된다. 김 위원장은 중도층 확보를 위해 호남 민심을 얻는 데 주력했다. 가장 중요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서울의 호남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8월 당 지도부가 일제히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한 데 이어, 기록적인 장마로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를 찾아 자원봉사를 진행했다.
여기에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아젠다인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를 가져와 새 정강정책에 추가했다. 장외 투쟁을 주도하는 극우 태극기 부대와는 선을 그으며 좌클릭 정치에 매진했다. 이로 인해 지난 8월 리얼미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정당 지지율 36.5%를 기록하며 33.4%에 그친 더불어민주당을 잠시나마 역전했었다.
당의 정치 원로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제기했다. 지난 20일 당 지도부가 상임고문단과 가진 회의에서, 고문단 의장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야당은 여당을 비판하고 새로운 정책을 개발해서 다음 정권을 잡는 정당이다. 야당의 역할은 여당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군복무 의혹, 북한군의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건 등 정부·여당의 실정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하고 당 지지율이 여전히 답보 상태임을 꼬집은 것이다.
“내홍 잠재울 돌파구는 재보선 승리뿐”
급기야 비대위 체제를 끝내자는 주장도 나왔다. 5선인 조경태 의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SNS를 통해 “비대위의 한계를 많은 국민과 당원들이 절감하고 있다. 현재의 비대위로는 더 이상 대안세력, 대안정당으로 기대할 수 없다”며 전당대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4선인 김기현 의원은 “이제는 곱셈정치를 할 때다”라며 “공천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탈당한 분들의 조속한 복당 조치도 취해야 하고, 나아가 중원으로 폭을 넓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기본 철학을 공유하는 세력과 연대해 화학적 결합 통해 창조적 폭발력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으로선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보 정치를 표방하면서 ‘산토끼’(호남행)를 잡자니, 기존 보수 세력인 ‘집토끼’(TK 지역)가 이탈할 수 있다는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당의 기존 보수 노선을 유지한다면, ‘도로 보수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권 탈환에 실패할 수 있다.
물론 내년 4월까지 보장된 비대위 체제를 대승적 차원에서 지지한다는 중진들도 있다. 5선의 한 중진 의원은 “당을 수습하고 30%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끌고 가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당내에서 여러 얘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일단 믿고 맡겼으니 같이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상징색이나 정강정책이 중도·진보로 나아가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바람직한 방향이다”라며 “비대위 체제에 맡겨놨으면 국민으로부터 엉망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는 한 일단 받아주는 게 옳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반면 김용철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는 “선진국인 미국, 영국 등의 전통 정당은 정권을 빼앗긴다 해도 보수는 보수, 진보는 진보만의 정치적 노선을 유지한다”며 “다만, 내년 서울·부산 재보선에서 완승한다면 김 위원장의 리더십 논란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