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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감한 적이 많다. 페트병 라벨 뜯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나마 생수병은 양호하지만 페트병이 생수만 있는 게 아니다. 각종 탄산음료, 오렌지주스, 아이들이 마시는 캐릭터 음료 등 종류가 많은데 직접 뜯어본 사람은 안다. 굴곡이 있고 완전히 밀착된 이 페트병은 칼집을 내도 잘 뜯어지지 않고, 접착제가 잔뜩 발라져 있어 겨우 떼어내도 절반 이상은 그대로 몸체에 붙어 있다. 깨끗하게 떼어내 보려고 노력하다가 인내심이 바닥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대체 왜 이런 수고를 소비자에게만 강요하는가. 1995년 재활용 분리배출이 도입된 후 25년간 소비자들은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끊임없이 분리배출 방법을 안내했다. 분리배출이 안 된 재활용 수거장을 보여주며 죄책감이 들게 하거나, 과태료를 올려 경각심을 갖게 했다.
다시 페트병 얘기로 돌아가자. 유색 페트병에서 무색 페트병으로의 교체, 라벨을 떼어 분리 배출하는 것은 폐플라스틱 감소 대책의 일환으로 몇 년간의 계획을 거쳐 도입됐다. 하지만 그동안 제조업체들은 뭘 했나. 생수업체 중 유일하게 롯데칠성음료만 무(無) 라벨 생수인 ‘아이시스 에코(ECO)’를 지난해 출시했다. 그 사이 다른 업체들은 ‘잘 뜯어지는 접착제를 발랐다’고 홍보하고, 라벨을 떼어서 분리 배출하라는 캠페인을 했다.
분리배출을 용이하게 하려는 노력을 나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무 라벨 생수처럼 아예 분리배출의 번거로운 과정을 없애는 방법도 있었는데 말이다. 생수 브랜드를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라벨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사 제품 광고를 위해 소비자들의 수고로움을 강요한 셈이다.
더 이상 분리배출의 번거로움과 책임을 소비자의 몫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제조단계부터 분리배출을 쉽게, 실제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를 만들려는 제조업체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