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도 빈부의 격차는 공간의 차이로 드러난다. 부잣집은 거실도 넓고 방도 많고 마당도 넓다. 심지어 숨겨진 지하실까지 있다. 공간이 넘친다. 가난한 집은 비좁은 반지하다. 부잣집 가족들이 캠핑을 떠나고 집을 비우자, 가난한 집 아들 기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넓은 집 앞 정원에 홀로 눕는 일이었다. 가난한 집 딸 기정은 혼자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즐겼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만의 사적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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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는 또 다른 의미에서 공간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생존의 문제다.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바이러스의 감염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거리두기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지하철을 타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많지 않다. 이들은 겨우 자신의 입과 코를 가린 마스크에 의존해 위태로운 출근길에 나선다.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기숙사가 코로나 감염의 온상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공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코로나19는 더욱 가혹한 질병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근본적인 복지국가를 위해선 “공간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코로나 이후 기업들이 도입하는 재택근무도 공간의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집에서 근무하는 순간 우리는 사적인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모두가 출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지하철이 ‘지옥철’로 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물론 재택근무의 생산성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은 우연한 만남에서 나온다”고 했다. 만나지 않고 각자 집에서 일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인 건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많은 것들을 바꿔 놓고 있다. 근무형태의 변화는 공간을 바꾸고, 공간은 각자의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