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에는 해마다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찾아 공무원, 공기업 등을 준비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고시 문화가 있다. 학원가, 원룸 그리고 즐비한 식당가들이 공룡 클러스터를 형성하여 마치 고시 경제특구를 방불케 한다.
지금과 같이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에는 누구나 평생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극소수만 선발되는 치열한 관문을 위해 수십만 명의 청춘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많은 인재가 실리콘밸리나 베이징 중관춘 같은 벤처창업 클러스터에서 열정을 불사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5년 뒤면 65세 이상의 인구 천만 명 시대가 된다. 누가 공공부문 인건비와 각종 연금, 그리고 급증하는 사회보장비를 감당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우리나라 대학들은 오랫동안 동결해온 등록금 수입으론 혁신을 위한 인프라 투자는커녕 시설유지와 인건비 감당에도 힘이 부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지원하는 재정지원사업에 올인해야 하고 취업률, 논문수, 교수 충원률 등 객관적 성과지표 맞추기에 급급하다. 학문의 영역이 다양하니 이러한 지표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공계나 상경계의 경우만이라도 핵심 지표를 달리하여 실질적으로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R&D가 기술사업화로 연결되는 지표를 보면 그 국가의 미래 성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2019년 국내대학 기술이전 수입 결과를 보면 KAIST가 101억 8천만 원으로 1위이고, 뒤를 이어 서울대 88억 원, 고려대, 성균관대, 경희대, 연세대, 한양대 순이다.
중국은 2013년 연간 250만개의 기업이 탄생했는데 2017년에는 약 607만개까지 늘어났다. 하루 평균 약 1만 6600개의 기업이 생겨난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기업가정신 순위는 수년째 26위에 머물러 있다.
각국의 창업활동지수를 연구하는 GEM(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가의 1인당 GDP가 2만 5천달러 수준이 되면 그래프의 변곡점에 도달하게 되고, 3만달러 이상으로 상승시키기 위해 창업 활동이 증가하게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미국은 1인당 GDP가 2만 달러에 접어든 1980년대 후반부터 창업교육을 혁신하여 체계적으로 이루어 왔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명문대학들은 세계의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옛 어른들은 과실나무에 달린 가장 큰 과일은 따먹지 않고 두어 다시 종자로 쓰기 위해 남겨두었다. 우리 미래세대가 살아갈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남겨줄 석과불식(碩果不食)은 무엇일까. 그 길은 취업률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기술이전, 기술사업화로 질 높은 창업을 유도하는 기업가정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