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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출석, 의원 이름 알리기 위한 수단 활용해
사실 A씨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관 담당자들이 매년 이런 일을 반복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국감 때만 되면 대기업 총수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기 때문이다. 부르는 이유가 타당하면 그나마 수긍은 간다. 하지만 아주 지엽적인 일로 총수들을 부르는 경우가 왕왕 있어 골치를 앓는다. 예를 들어 올해 정운천·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대기업들의 농어촌 상생협력기금 출연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5개 그룹 총수를 모두 증인으로 신청했다. 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차량결함 문제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같은 당 오기형 의원은 네이버부동산 독과점 문제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는 이런 일로 그룹 총수를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그룹 총수에게 이런 세부적인 일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또 막상 부르고 나서도 기업의 입장을 충분히 듣기보다 본인 주장만 늘어놓기 일쑤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올해는 상황이 더 녹록지 않았다. 국회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부터는 외부인의 국회 출입 자체가 금지되면서 의원실 관계자들을 찾아가기도 쉽지 않게 돼 더 답답한 상황이다. 할 수 없이 그는 종일 휴대폰을 붙들고 그룹 총수를 증인으로 부른 의원실 관계자들에게 전화해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관계자들은 그가 하도 전화를 걸어대니 “그만 좀 하라”고 대놓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같은 노력 덕분인지 올해 증인 신청에서는 대기업 총수는 한 명도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다만 해당 이슈를 담당하는 사장과 부사장, 전무 등 임원진은 몇 명 증인으로 결정돼 국감장에 나가야 한다.
당장 증인 채택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지만, 이제부터는 실제 국감장에 나가는 임원들의 답변 자료를 만드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나가봐야 발언할 기회를 충분히 주지도 않겠지만 만약을 대비해 꼼꼼하게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A씨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자괴감이 들곤 한다. 9~10월이면 기업들은 내년도 경영계획을 세우기 위해 분주한 때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비상경영을 하고 있는 때라 내년도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 이런 시기에 비생산적인 일에 자신을 포함해 수많은 인력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와 미·중 갈등 등으로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큰 시기인데, 국회는 올해도 국정감사로 기업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며 “특히 하반기에는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국정감사까지 겹쳐 기업들의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국회에 기업인들이 직접 출석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회의장은 50인 미만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국회 자체에 보좌진과 언론 등 많은 인력이 상주하는 곳이라 방역에 취약할 수 있다. 만약 출석한 기업 대표나 임원들이 코로나에 감염돼 격리라도 되면 기업경영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국감 자체를 화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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