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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 밴드(YB)의 ‘나는 나비’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 300여명의 관객이 일제히 일어나 무대 앞으로 뛰어나갔다. 야광봉 불빛과 환호성이 뒤엉킨 가운데 무대 위 보컬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흡사 유명 밴드의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지난달 20일 경기도 가평의 한 캠핑장에서 열린 서울대 경영학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현장. 무대 위에서 노래와 연주를 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밴드 ‘가락(G·A·Rock)’이다.
“‘가락’이란 이름은 선율이나 곡조같은 음악적 뜻도 있지만, 사실은 교수(G)·아저씨(A)·록(Rock)이라는 뜻이에요.”(김우진 서울대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4명이 ‘가락’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황인이 교수가 보컬을 맡고 박진수 교수가 드럼을, 송인성 교수가 베이스를, 김우진 교수가 기타를 맡았다. 가락이 결성된 것은 지난해 12월. 신입생 모집이 한창이던 때다.
“작년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갔는데 학생들과 어울리기가 아무래도 쉽지 않더라고요. 같이 즐기면서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밴드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박진수 교수)
박 교수의 아이디어에 한때 뮤지션을 꿈꿨던 김 교수가 먼저 합류했다. 뒤따라 송 교수와 황 교수가 뜻을 모았다. 신입생 O·T까지 남은 시간은 단 두 달. 선곡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요즘 학생들도 알면서 우리도 즐길 수 있는 곡을 고르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래서 연습을 해 놓고도 곡을 바꾸기도 했죠.”(송인성 교수)
선곡 후에는 매일 같은 연습이 이어졌다. 입원 일정이 잡혀 있던 박 교수는 담당 의사에게 매일 밤 외출을 허락받고 입원을 했다. 낮에는 치료를, 밤에는 드럼을 치러 연습실을 찾았다. 황 교수는 주말마다 딸과 함께 노래방을 찾아 냉철한 평가를 받았다.
한 달간의 맹연습이 마무리될 무렵, 공연 전날 문제가 생겼다. 메인보컬 황 교수가 무리한 연습에 감기까지 겹쳐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
“성대 결절이 돼도 좋으니 정상적인 목소리로 무사히 마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약을 제일 많이 먹은 날인 것 같아요. 감기약부터 목에 좋다는 약은 다 먹었죠.”(황인이 교수)
무대 위에선, 고등학교 밴드 출신으로 공연 경험이 있던 김 교수와 송 교수가 공연의 방향을 잡았다.
“보컬이 목 상태가 안 좋아서 걱정했는데, 무대에 오르니 목소리가 딱 터지더라고요.”(김우진 교수)
황 교수는 무대 위에서 날계란을 깨 먹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학생들의 환호성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날 공연 이후 캠퍼스에서 ‘가락’ 멤버를 알아보는 팬들도 생겼다. 초콜릿을 건네는 여학생부터 ‘교수님’을 외치며 달려와 인사를 하는 학생까지 먼저 다가오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가락’은 이제 다음을 준비 중이다. “일단 키보드 주자를 영입하려고 해요. 지원하는 교수들이 많아서 오디션을 보려고요. 공연은 누구든 찾아주는 곳이 있다면 가서 해야죠. 공연을 통해 기금 모금 행사를 기획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박진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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