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육아]"세살 영재 여든까지?"…영유아까지 번진 영재교육 열풍

작은육아 4부 ‘키즈카페부터 유아 사교육까지’
전체 초중생 2%가 영재…유아부터 영재교육원 준비
영재학교 재학생 83.6% “진학 준비때 사교육에 의존”
전문가들 "과도한 조기 교육, 아동 발달 저해 우려"
  • 등록 2017-11-24 오전 6:30:00

    수정 2017-11-24 오전 9:22:38

(사진=케이지(KAGE) 한국영재교육학술원 주식회사 홈페이지 갈무리.)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30개월 된 딸을 둔 워킹맘 김설민(가명·33)씨는 아이를 영재교육원에 보내야 할 지를 두고 고민 중이다. TV 영재 아동 육성 프로그램 애청자인 김씨의 시어머니가 프로그램에 출연한 영재 아동이 ‘유아용 지능검사’를 받는 것을 본 뒤 김씨의 딸도 받아볼 것을 권유한 게 발단이 됐다. 김씨의 딸은 지능이 상위 1.3%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김씨부부는 아이가 어릴 땐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자는 생각이었지만, 시어머니는 아이가 하루라도 어릴 때 영재교육을 받아놔야 한다고 채근한다.

영재교육 열풍이 영유아까지 확산하는 분위기다. 영재 사교육 바람이 ‘조기 영재 육성’이란 타이틀을 앞세워 7세 이하 영유아까지 집어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재교육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무분별한 조기 교육을 부추기는 유아 영재 교육시장의 팽창과 가격 거품 현상을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천대 과학영재교육원 학생들이 가천대 길병원을 방문해 현장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가천대)
영재학교 재학생 83.6% “진학 시 사교육에 의존”

1999년 정부는 재능이 우수한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영재교육기관 육성을 골자로 한 ‘영재교육 진흥법’을 제정했다. 이후 영재교육기관은 매년 증가 추세다. 2015년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사설 학원을 제외한 국내 영재교육기관(대학 교육원 포함)은 처음 시행 당시 400개에서 2015년 2539개로 6배 이상 증가했다.

국가가 지정한 영재교육 대상자 수도 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16년 초중고 영재교육 대상자 통계에 따르면 2003년 1만 9974명에서 지난해 11만 130명으로 무려 5.5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초중고 학생 수가 608만 8827명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초중고 학생 중 1.8%가 영재교육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대상이 확대면서 영재는 태어나는 것이라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인식도 강해지고 있다. 지필고사와 면접 등 영재교육원 입학을 위한 절차가 정해져 있어 사설 영재학원에서 영재교육원 입학을 위한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이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이 2015년 발표한 ‘영재학교 학생 선발 연구’에 따르면 영재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응답자 1803명의 83.6%가 ‘영재학교 진학을 위해 사교육에 의존해야 했다’고 답했다.

영재 사교육 시장은 상상 이상이다. 한국영재교육학술원 주식회사(KAGE)는 양재와 목동 등 4곳에 학술원을 두고 있다. 영재교육 학원 브랜드인 와이즈만은 전국 120여개 지점을 두고 있으며 서울에만 30개가 넘는 분원이 있다. 하이스트가 속한 ‘타임교육’ 학원그룹은 12개의 영재교육 브랜드를 보유 중이다.

대부분의 영재 준비 교육 기관들은 초등생은 물론 만 4세 이상 유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수 정예로 조를 짜 놀이를 활용한 창의력, 사고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수업 진행 방식과 커리큘럼, 교재제작은 온전히 교사 개개인의 재량에 달렸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어떤 프로그램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1회 50분~최대 90분씩 한달에 4번 있는 수업의 수강비가 월 20만~30만원선이다. 별도로 구입해야 하는 교구는 120만~200만원 선이다.

5세 아들을 서울의 한 영재교육학원에 보내고 있는 주부 권모(35)씨는 “창의력과 사고력 수업 2개를 수강 중이다.학원비로만 매달 60만원이 나간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영재교육학원 관계자는 “매년 입학 설명회 때마다 100~200명 가까이 되는 엄마들이 몰려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라며 “만 3세 이하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설명회 참석과 상담 요청도 눈에 띄게 늘었다. 대기 인원이 많아 수업 들으려면 적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30개월 되기도 전 지능검사 요청…아동 성장 발달 우려

웩슬러·카우프만 등 유아용 지능검사들도 비싼 가격에도 불구 인기다. 지능검사 결과 상위 3~15% 이내를 기록해야 영재 교육학원 입학이 가능한 탓이다. 똑같은 방식의 지능검사임에도 응시 기관과 나이에 따라 가격대는 9만~2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웩슬러·카우프만 등 기본 지능검사 외 학원 차원에서 운영하는 창의력 검사 등을 받게 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KAGE에서 운영 중인 지능검사(웩슬러) 비용은 12만~16만 5000원이나 되지만 매달 전국에서 300~500명이 시험을 치른다.

KAGE 관계자는 “유아용 지능검사의 응시 가능 나이는 30개월”라며 “아직 자녀의 나이가 응시 가능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학부모들의 문의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영재교육의 저연령화는 관련서적과 영재 육성 프로그램의 인기가 한 몫을 했다. 4세 딸을 둔 워킹맘 정모(35)씨는 “영재 아동 관련 서적이나 프로그램을 보면 자녀의 영재성이 발견되는 나이가 2~3세로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며 “사전 대비 차원에서 지능검사를 받아보게 하는 것이 요즘 엄마들의 트렌드로 여겨지고 있다.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육아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재 교육 전문화 및 조기 영재 발굴의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했지만, 지나친 조기 교육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동들의 발달과 성장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주아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센터 소장은 “영유아 시절은 가정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탐색을 시켜줘야 할 시기”라며 “시간이 지나 누구나 당연히 배우게 될 상식과 지식을 조금 더 빨리 습득하는 것이 좋은 건 아니다. 남들보다 ‘빨리’라는 사실에만 열광해 부모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그아이가 더 자랐을 때 관련 지식의 꽃을 피우기도 전에 흥미를 잃어버리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가정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낼 수 없을 때는 국가 등 기관이 개입해야겠지만 이 역시 섣불리 아이가 획일화된 교육에 매몰되지 않게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이정욱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 역시 “영유아 시기 아이들은 커 가면서 성향과 흥미가 끊임없이 바뀔 수 있고, 변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영재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부터 세우기 모호하다”며 “그 시기에는 특정 영역의 영재성을 발견해 발전시키기보다는 인지능력, 사회성, 정서 및 애착 정도 등 전인적 분야의 발달을 우선시 여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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