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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가족들은 이날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올브라이트는 체코 이민자 출신으로 11세 때 미국에 들어왔다. 1937년 체코 프라하에서 마리에 야나 코르벨로바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부모는 모두 유대인이다. 부친인 요셉 코르벨은 외교관이었다. 올브라이트는 1959년 결혼했다 1982년 이혼한 전 남편(조셉 메딜 페터슨 올브라이트)의 성이다.
정부 일에 발을 들인 것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백악관 안보특보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보좌관을 지내면서다. 이후 조지타운대에서 국제정치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마이클 듀커키스의 외교 고문직을 맡았다.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올브라이트를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발탁했다. 재선에 성공한 이후에는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 그의 상원 인준안 투표는 찬성 99대 반대 0이라는 초당적인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남성이 절대 다수로 주류였던 미국 외교계에서 첫 여성 국무장관을 지내며 미국의 강성 외교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체코·헝가리·폴란드 등 옛 공산권 중부 유럽 국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옹호하면 타도의 확장을 추진했다. 발칸반도의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동맹의 개입을 촉구하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대한 미국의 적극 개입을 이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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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타운대에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을 사사(師事)한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그가 이 건물에 미친 영향은 매일매일, 모든 곳에서 느껴진다”며 “그는 첫번째 여성 국무장관으로서 선구자였고 말 그대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