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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은 밀항 [물에 관한 알쓸신잡]

선박평형수를 통한 생태계 교란
  • 등록 2022-07-02 오전 11:30:00

    수정 2022-07-02 오전 11:30:00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돈 필요해? 어떻게 좀 나눠 줘? 5대 5로 나눌까?”

“누가 5야?”


연일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영화 ‘범죄도시2’에서 돈을 챙긴 악당 강해상이 중국 밀항선을 타기 위해 항구로 가던 중 마석도 형사와 조우하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영화 ‘범죄도시2’ 스틸컷.


범인과 형사의 긴장감 도는 맞대결 장면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는 웃음 코드는 긴장은 스크린 속에 있는 두 사람이 할 테니 관객은 팝콘 먹으며 즐기기만 하라는 감독의 배려인 듯합니다.

범죄를 주제로 한 많은 액션 영화에서 거물급 악당은 경찰을 피해 밀항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밀항을 통해 해외로 도피하는 범인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습니다.

밀항은 적법한 출입국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말하는데 자국에서 죄를 짓고 도망가는 도피형도 있지만, 자국의 불안한 체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생계형도 있습니다. 밀항은 비행기편과 배편이 가능하지만 항공기에 비해 규제와 관리가 덜 엄격한 배를 주로 이용합니다.

도피형이든 생계형이든 밀항을 통한 밀입국자는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적법한 절차 없이 몰래 자국으로 들어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식물이나 동물도 정해진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른 나라로 유입되면 생태계를 교란 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밀입국자만큼이나 골칫거리가 됩니다.

생물의 반입을 막기 위해 나라마다 검역을 강화하고 있지만 출입국 절차를 피해 밀입국하는 사람이 있듯이 검역을 피해 밀입국하는 생물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들 역시 밀입국 수단으로 배를 이용합니다. 배는 바닥에 상당한 양의 바닷물을 싣고 다니는데 해양 생물은 이 바닷물과 함께 밀입국합니다.

화물을 실어 나르는 배는 왜 그렇게 많은 바닷물을 싣고 다니는 걸까요? 화물차가 화물을 내려 주고 빈 차로 돌아올 때가 있는 것처럼 배도 화물을 하역하고 나서 빈 배로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화물을 실으러 갈 때도 배를 비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죠.

선박평형수를 통한 해양 생물 이동. (이미지=최종수 위원)


배에 화물을 싣지 않으면 배는 가벼워져 물에 잠기는 부분이 줄어듭니다. 이렇게 되면 배의 무게중심이 높아져 무게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지기 쉽습니다. 물에 잠기는 배 깊이가 낮아지면 배를 움직이는 스크류가 수면 밖으로 나와 추진력을 제대로 받기도 어렵습니다.

화물을 실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물을 배 위에만 잔뜩 쌓게 되면 무게중심이 높아져 배가 쉽게 넘어집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 아래쪽을 무겁게 해 무게 중심을 낮춰줘야 합니다. 마치 오뚜기가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배의 무게중심을 낮추기 위해 배 바닥쪽에는 바닷물을 채웁니다.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배에 채우는 이 물을 선박평형수라고 하는데 배 균형을 위해 화물 적재량의 30% 이상을 선박 평형수로 채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배에 실리는 평형수의 양은 배에 실리는 화물의 양에 따라 달라집니다. 화물을 싣고 출항할 때는 적은 양의 평형수를 채웠다가 목적지에 화물을 내리고 빈 배로 돌아올 경우에는 많은 양의 평형수를 채우게 됩니다.

배에 바닷물을 채우거나 배출하는 과정에서 바닷물 속에 살고 있는 해양 생물도 배를 타고 함께 이동합니다. 공식적으로 수출입되는 생물은 철저한 검역 절차를 거치지만 평형수에 실려 밀입국하는 생물은 검역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해양 생물은 의도치 않은 밀항을 하게 된 셈이지요.

평형수 배출을 통해 낯선 바다에 유입된 해양 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드물게 강한 생존력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는 생물도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생물종은 그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번식해 해양 생태계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을 잡아먹는 포식자가 거의 없어 개체수를 폭발적으로 늘려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우리나라 고유의 해산물로 알고 먹는 음식 중에 멀리 타국에서 온 생물종이 많습니다. 짬뽕 같이 얼큰한 국물요리에 빠지면 섭섭한 홍합. 우리가 홍합으로 알고 있는 이 패류의 본명은 지중해 담치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이 고향인 이 생물종은 1950년대 배를 타고 국내에 유입된 이후 우리나라 토종 홍합을 밀어내고 우리나라 전역에 퍼졌습니다. 해물탕 국물 맛을 시원하게 해주는 미더덕도 멀리 미국 동부 연안에 살고 있다가 배 바닥에 붙어 우리나라 바다로 유입된 생물종입니다.

미역 양식장. (사진=이미지투데이)


외국 바다에 서식하던 생물종이 우리나라 바다에 들어와 문제를 일으키듯이 우리나라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종이 다른 나라 바다를 점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모든 해산물을 식용으로 이용하는데 외국 사람들은 생선류 외에는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외국 바다에 적응한 해조류와 패류는 애물단지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귀한 취급을 받는 해양생물이지만 외국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생물종도 있습니다. 미역이 대표적입니다.

미역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미역국은 산모가 출산 후에 몸의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고 그런 의미로 생일이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사랑받는 미역이지만 해조류를 잘 먹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미역은 애물단지일 뿐입니다. 세계 100대 악성 외래종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등록된 이름도 미역의 일본어인 와카메와 바다잡초라는 의미의 영어 ‘seaweed’를 합친 ‘wakame seaweed’입니다.

선박 평형수는 배가 균형을 잡고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해양 생태계 입장에서 보면 원하지 않는 불청객을 밀입국시키는 밀항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평형수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문제가 되면서 최근 건조하는 선박은 평형수 처리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한다고 하니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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