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 외에도 비비 킹(B. B. King), 아이크 터너(Ike Turner), 조니 캐쉬(Johnny Cash),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 등이 이곳에서 첫 음반을 녹음했다. “Mystery Train”, “Blue Suede Shoes”, “Folsom Prison Blues”, “I Walk the Line”, “Ooby-Dooby”, “Whole Lotta Shakin’ Going On”, “Great Balls of Fire” 등 지금까지 사랑받는 명곡은 모두 여기서 탄생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New Yorker)는 2015년 기사에서 샘 필립스를 ‘산업 파괴자(industry disrupter)’라고 표현했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기존 휴대폰 시장을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스마트폰 시대를 연 것이 산업 파괴자의 좋은 사례다. 필립스의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대도시가 아닌 지역 기반이었고, 자본력이 낮았으며, 제품을 유통할 시스템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형 레코드사 6곳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음악을 레코딩해 연달아 히트를 시키면서 대중음악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샘 필립스는 1950년 멤피스 레코딩 서비스(Memphis Recording Service)를 설립했다. 이 스튜디오의 슬로건은 ‘무엇이든 어디서든 언제든 녹음해준다(We Record Anything-Anywhere-Anytime)’는 것이었다. 필립스는 뮤지션들이 언제든 찾아와 노래를 녹음해보는 장소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 찾아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노래를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음반 녹음을 제안하곤 했다. 처음엔 음반 제작과 배급을 로스앤젤레스(L.A.)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의 소규모 레이블에 맡겼다. 그러나 뮤지션의 저작권을 놓고 마찰이 생기자 1952년 선레코드를 세워 직접 제작과 배급을 시작했다.
필립스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스탠다드 팝과는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는 훗날 “내가 만약 발라드 곡을 발표했다면 당신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샘 필립스를 사로잡은 엘비스의 곡은 “That‘s All Right (Mama)”였다. 이 곡은 지역 라디오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멤피스 이외의 지역 뮤지션들이 선레코드를 찾아오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샘 필립스의 사업 수완은 좋지 못했다. 엘비스의 전성기가 시작된 1955년에 단 돈 3만5000달러를 받고 엘비스를 대형 레코드사 RCA에 넘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로선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이후 엘비스가 벌어들인 돈을 생각하면 선견지명이 없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물론 대형 소속사가 있었기에 엘비스가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필립스는 RCA에서 받은 이적료를 다른 로큰롤 뮤지션들의 음반을 제작하는 데 사용했다.
1960년을 전후해선 필립스는 사실상 프로듀싱 작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1969년에는 셸비 싱글턴(Shelby Singleton)에게 사업을 매각한 후 업계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2003년 7월 30일에는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80세. 그가 설립했던 선스튜디오 자리가 미국 역사기념물로 지정되기 하루 전이었다.
“당신이 무엇인가 다르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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