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사태에도 1600만호 전기요금 '깜깜이 부과'(종합)

기계식 계량기 요금부과 체계 때문
검침원 다녀가야 요금 알 수 있어
한전 "스마트계량기 2250만호 보급"
2016년 약속했는데 올해 29% 그쳐
늑장 보급으로 '전기료 불안' 증폭
  • 등록 2018-07-26 오전 6:00:00

    수정 2018-07-26 오전 9:32:36

시민들이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 15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에서 에어컨 실외기로 가득찬 한 건물 외벽 앞을 지나갔다. 기상청은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주택·상점 등 전국의 1600만호가 ‘전기요금 폭탄’ 고지서를 받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폭염으로 전기수요가 급증하는데 실시간으로 전기요금을 알려주는 계량기조차 없기 때문이다. 한전(015760)이 계량기 보급을 약속해 놓고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5일 한전에 따르면 스마트계량기인 AMI가 올해 6월까지 650만호에만 보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목표치 대비 29%로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앞서 한전은 2016년 12월에 당시 330만호에 보급돼 있던 AMI를 2020년에 2250만호까지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1년7개월이 흘렀지만 300만호에만 보급됐고 1600만호는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AMI는 미국·이탈리아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주로 보급된 선진국형 전자식 계량기다. 기존 기계식 계량기의 경우 내달께 고지서를 받기 전에는 정확한 전기요금을 알 수 없다. 그러나 AMI는 검침원 없이 원격검침이 가능해 소비자가 전기사용량, 예상 요금을 1시간 단위로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2년 전 여름 누진제 파동을 겪은 한전은 후속대책으로 AMI 보급을 약속했다.

하지만 보급이 지체돼 올해도 ‘전기요금 깜깜이’ 사태가 재연될 전망이다. 누진제가 2016년 12월 완화됐지만 요금부과 체계는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재작년보다 전기 사용량이 더 많은 상황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4일 최대전력수요가 9247.8만kW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령층, 저소득 단독주택, 자영업자, 영유아가 있는 가정이 8~9월에 예상보다 요금이 많이 부과된 고지서를 받을 수 있다.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한전의 의지 부족 때문”이라며 “소비자권익을 생각한다면 요금 폭탄에 불안해하지 않도록 빨리 보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전 관계자는 “시스템 준비 과정에 시간이 걸려 보급이 늦어진 것이지 고의로 늦춘 게 아니다”며 “앞으로 보급 숫자가 엄청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기계식 계량기(왼쪽)과 실시간 전력량 측정이 가능한 한전의 스마트계량기 AMI(오른쪽) 모습. AMI는 1시간 단위로 전력 사용량, 예상 전기요금을 알 수 있다.
핵심은 전기요금 부과 체계 문제

쟁점은 전기요금 부과 체계의 문제다. 현행 전기요금은 검침원을 통해 검침을 거친 뒤 요금이 책정된다. 검침일은 매월 1~7차로 분리돼 있다. 검침일은 △1차 매월 1~5일(당월 25일 납기) △2차 8~12일(당월 말일 납기·) △3차 15~17일(다음 달 5일 납기) △4차 18일~19일(다음 달 10일 납기) △5차 22일~24일(다음 달 15일 납기) △6차 25일~26일(다음 달 20일 납기) △7차 말일(다음 달 18일 납기) 순이다.

이런 방식 때문에 소비자가 전기를 얼마나 사용했는지는 고지서를 받아야 알 수 있다. 만약 7월 폭염으로 전기를 많이 썼다면 다음 달에 ‘요금 폭탄’ 고지서를 받을 수 있다. 특히 기계식 계량기를 쓰는 가구의 경우 고지서를 받기 전에는 요금을 실시간으로 알 수 없다. 기계식 계량기를 쓰는 상점·주택·아파트 등은 1600만호에 달한다.

일례로 서울에 사는 주부 김가연(가명) 씨 사례를 보자. 김 씨는 25일 한전 사이버지점 사이트에 접속해 전기요금을 알아봤다. 하지만 사용기간·사용량(kWh)이 헷갈렸다. 고지서를 버려 고객번호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핸드폰으로 123번을 눌렀다. “통화량이 많아 상담원 연결이 지연되고 있다”는 응답이 반복됐다. 기다린 끝에 상담원과 연결이 됐다. 그런데 상담원은 “아파트는 호별 전기요금을 지금 알 수 없다. 주택은 검침원이 검침한 날짜까지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김 씨는 전기요금 확인을 포기했다.

이런 사례 때문에 한전은 재작년 12월에 스마트계량기인 AMI 보급을 약속했다. 기계식 계량기로 인한 불편함을 해소하고 소비자 권익보호를 위해서다. AMI를 설치하면 실시간 사용량·요금을 알 수 있다. 한전은 핸드폰에서 앱을 통해 통신요금을 확인하듯이 핸드폰으로 전기요금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당시 누진제 사태를 겪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런 AMI를 도입하는 시기를 2020년까지로 당초 계획보다 2년이나 앞당기기로 했다. 한전이 누진제 완화 비용을 비롯한 AMI 설치비(1조5000억원) 등을 모두 부담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전에 따르면 AMI 구축비는 1대당 8만원 수준이다. 계획대로라면 2020년까지 2250만호에 보급돼야 한다.

이후 2년이 흘렀지만 올해 6월까지 보급 대수는 650만호에 그쳤다. 이 속도 대로 가면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 한전 관계자는 “통신 방식을 정하고 업체 선정·검증을 하는 등 시스템을 준비하는데 그동안 시간이 걸렸다”며 “기술이 완비돼 해킹 우려가 없다. 앞으론 보급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 한전의 경영 상황이 좋지 않다. 한전은 지난해 4분기에 -1294억원, 1분기에 -1276억원으로 2분기 연속 영업손실(연결재무제표 기준)을 기록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적자 상태인 한전이 적극적으로 AMI에 투자를 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둘째 한전의 의지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원격검침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그동안 도입이 어려웠던 것은 검침원들의 실업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AMI가 도입돼도 검침원들이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이런 쟁점이 수년 전부터 제기된 상황”이라며 “한전의 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AMI 빨리 늘리고 누진제 완화해야”

결과적으로 AMI 도입이 늦어질수록 소비자로선 손해다. 지금처럼 ‘전기요금 깜깜이’ 상태가 계속되면 요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올해처럼 폭염이 극심한 때는 ‘전기요금 폭탄고지서’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 유승훈 교수는 “소비자 후생 입장에서 생각해 빨리 AMI 보급부터 늘려야 한다”며 “점진적으로 누진제는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전 관계자는 “2020년 목표치를 달성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누진제 완화 여부에 대해 “누진제에 대한 전체적 영향을 한 번 분석하고, 앞으로의 한전 경영상태를 면밀히 살펴본 후에 고민을 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24일 최대전력수요가 9247.8만kW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1~22일은 주말이어서 최대전력수요가 내려갔다. 한전은 2020년까지 스마트계량기(AMI)를 2250만호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재작년에 밝혔다. 하지만 지난 2년 간 320만호만 추가로 보급돼 보급 속도가 느린 상황이다. 2016년 12월, 2018년 6월 집계 기준, 2020년은 목표치. 단위=만가구, 만kW.[출처=한국전력, 전력거래소,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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