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가부장제 속 여성 '내면의 식민화' 경종

- 심사위원 리뷰
극단 풍경 연극 '작가'
여성 사이의 고착화된 권력 표현
사회보다 개인의 인식변화 강조
  • 등록 2020-12-03 오전 6:10:00

    수정 2020-12-03 오전 6:10:00

연극 ‘작가’ 공연 사진. (사진=극단 ‘풍경’)
[이은경 연극평론가] 미투운동의 촉발 이후, 우리 연극계에는 혁명처럼 페미니즘·젠더 이슈가 분출했고, 점차 당연한 현실이 되었다. 극단 풍경의 ‘작가’(엘라 힉슨 작, 박정희 연출, 마정화 번역)도 이러한 작품들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거의 관심 두지 않았던 내부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케이트 밀렛의 주장처럼 “성 혁명의 전투장은 사회제도라기보다 의식”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가부장제 아래 학습된 여성(작가)에게 “내면의 식민화”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현실인지 연극인지 경계조차 모호한 에피소드가 작가와 연출가, 작가와 연인의 관계 속에 전개된다. 1막은 연극을 매개로 한 페미니즘 논쟁인데, 여성작가와 남성연출가의 익숙하면서도 고착화된 권력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막은 작가와 남자친구 간의 갈등을 그린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남자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작가의 대립은 아기 울음소리로 방해받는다. 모성 이데올로기에 의해 작가는 결국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3막은 내레이션으로만 진행되는 환상장면이다. 조도를 달리하는 조명의 느린 변화와 암전으로 극적 리듬감을 조성하면서 전개된다. 신화 속 인물 세멜레의 안내로 자연의 숲에 도착하여 여성부족의 일원이 된 작가는 완벽한 행복과 자유를 느낀다. 다시 인간세계로 나오니 억압이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는 작가의 진실한 육성이 담긴 장면이다. 4막은 1막과 유사한 논쟁이 전개되는 작가와 연출의 갈등장면이다. 하지만 1막과 달리 연출의 대사는 훨씬 많아지고 공격적인데, 작가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이다.

(사진=극단 ‘풍경’)
5막은 이 작품의 화룡점정이다. 작가와 여자친구 레즈비언 커플의 일상을 통해 여전히 권력으로 구조화된 관계를 보여준다. 가부장적 권력관계에 대해 그토록 비난했던 작가 역시 어린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는 기존 남성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세계적 명화로 평가되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여성착취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마침내 작가는 ‘내면화된 식민화’로 자신 역시 피카소와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게르니카’와 마주하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엘라 힉슨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기 때문에 사회시스템보다 개인의 인식변화가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진=극단 ‘풍경’)
무대는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좌우로 양분된 밝은색의 벽들은 서로 앞뒤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 각각의 벽 앞에는 작은 탁자와 의자들, 대형 소파가 놓여서 일상공간처럼 보이지만 연극의 무대세트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관객에게 뒷면을 전시하는 소파이다. 익숙하지 않은 소파의 위치는 성적인 표현을 완화하는 기능적 역할 외에 관객에게 시각적 낯섦을 환기시켜 새로운 관점을 요구한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앙상블은 과감한 설정과 표현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욕심내지 않고 원작에 집중한 장면연출은 주제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희곡은 진일보한 주제를 설득력이 있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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