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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칼럼] '삼성家'란 프레임의 컬렉션, 빛과 그림자

  • 등록 2021-01-21 오전 3:30:01

    수정 2021-01-21 오전 3:30:01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엄청나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관 하나는 더 세우고도 남을 겁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니까요.”

누구도 전체를 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하나라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쩌다 “뭘 샀더라” 혹은 “거기에 있더라” 듣는 게 전부였는데. 무엇을 부르든 얼마를 매기든 그 이상이었다. 삼성가가 사들인 미술품이 말이다. 그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는 하나뿐.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진짜배기는 따로 있었다. 이건희(1942∼2020) 회장의 개인소장품이다. 그저 섣부른 짐작뿐 감히 단정은 못했던 그 실체가, 아니 여전히 실루엣뿐인 윤곽이 최근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타계한 이 회장의 ‘컬렉션’에 대한 감정을 삼성이 의뢰하는 과정에서 알려진 건데. 국보·보물 고미술품, 해외 유명작가들의 대표작까지 감정 대상만 1만 수천여점이다. 가격을 매기면 1조 수천억원대. 이미 리움의 소장품 규모·가치를 뛰어넘는다. 지난달 시작한 감정의 최종 평가는 이달 말쯤 나올 거란다. 이제껏 그랬듯 단 한 점도 삼성이 공개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미술계에 잊힐 만하면 등장한 게 ‘삼성가 이슈’다. 그나마 지난 몇년은 뜸했더랬다. 2017년 3월 홍라희 리움 관장이 직을 내려놓고 미술관에 빗장이 걸리면서다. “일신상 이유”라고 선을 그었지만 바닥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이 있었다. 이후 4년 남짓 개점휴업을 이어가던 미술관은 3월 재개관을 목표로 안팎을 정비 중이다. 그런데 하필, 이때와 맞물려 이 부회장이 다시 구속수감됐으니. 참 지독한 우연이라 할 수밖에.

지독한 우연을 가장한 필연도 있다. 리움이 문을 닫은 동안 고꾸라진 미술시장이 말이다. 큰손이 사라졌다고 우려를 쏟아냈지만 2018년까진 괜찮았다. 숙원 아닌 숙원인 ‘미술시장 5000억원 시대’를 턱밑까지 끌어당겼으니. 그런데 2019년 들어 서서히 추락하던 시장이 하반기에 급격히 무너져버린 거다. 지난해 코로나는 그 추락에 날개까지 떼어버렸다.

‘이건희 컬렉션’도 피해 갈 수 없게 됐다. 호사가들의 입방아는 벌써 시작된 모양이다. 미술품을 팔아 상속세를 충당할 물밑작업이라고 열을 올린다. 진귀한 작품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면 우리 문화자산이 사라지는 국가적 손실이라고 거품을 문다. 그래, 상속세가 목적일 수도 있다. 삼성가가 내야 할 상속세는 주식만 11조 366억원이다. 여기에 부동산·채권·현금·미술품을 모두 합치면 계산기가 멎어버릴 정도니. 그 세금을 내겠다는데 어쩔 건가. ‘감 놔라 배 놔라’는 먹힐 수 없는 트집이다.

한편으론 이해도 된다. 이 회장은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를 추진할 만큼 밀어붙였고, 홍 관장은 실력과 안목으로 승부를 냈더랬다. 그에 얹은 재력으로 한 해 사들이는 미술품이 1000억원에 달한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참고로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책정한 미술품 구입비는 53억원이었다. 그런 컬렉션이 무너진다니 없던 걱정도 생길 판이다. 지나치게 높은 벽을 쌓아 그들만의 세상을 꾸려내는 게 흠이고 아쉬움이지만.

잘 돌아가면 삼성 덕, 잘 돌아가지 않으면 삼성 탓, 미술계가 딱 그랬다. 예전도 앞으로도 이토록 관심받는 ‘예술품’이 더는 없을 거다. 그럼에도 말이다. 삼성이 있어야 한국미술계가 산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사실이어도 안 되지만 입빠른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궁해선 더욱 안 된다. 바닥친 미술시장이 안타까워 굳이 누구 탓이라도 해야 한다면, 미술계를 휘두르는 삼성이 아니고, 삼성에 휘둘리는 미술계여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삼성미술관 리움 전경. 미술관 정원 중앙에 인도 출신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스테인리스스틸 작품인 ‘큰나무와 눈’(2011)이 보인다(사진=이데일리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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