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대통령의 책임과 침묵 사이

  • 등록 2020-12-02 오전 6:00:00

    수정 2020-12-02 오전 6:00:00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많은 이들은, 대통령이 존재하는 나라는 무조건 대통령제 국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내각제를 실시하는 국가들 중에서도 입헌 군주 대신 대통령이 존재하는 나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입헌 군주가 없는 나라에서는 명목상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을 둔다. 물론 이런 내각제 국가에서도 실제적 권력은 수상이 행사한다. 대통령은 명목상의 국가원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국가에서의 대통령은 문자 그대로 ‘좋은 말’만 한다. 인권과 세계평화와 같은 당위론적인 언급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제를 하는 국가에서의 대통령은 다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의 대통령은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고 있어, 국정에 대한 무한책임을 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제 국가에서의 대통령은 중요한 현안에 대한 방향성과 자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표명해야 한다.

요사이 문재인 대통령의 침묵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 문제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말이 없고, 탈원전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됐어도 침묵한다.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원래부터 침묵했던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대통령의 입장이 진짜 필요한 시점인 지금은 침묵하고 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 문제만 봐도 그렇다. 많은 이들은 이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경제가 너무나 어려워 생업에 몰두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판에, 추-윤 갈등의 원인에 대해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그냥 둘이서 갈등하고 있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법무부와 검찰이 거의 무한투쟁에 가까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법무부와 검찰에 대한 신뢰 추락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누가 옳고 그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저 정부 기구 간에 싸우고 있다는 사실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싸움을 보며 많은 국민들은 정부 기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싸움은 법무부와 검찰에 대한 신뢰만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부 기구에 대한 신뢰도 추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 기구 혹은 조직에 대한 신뢰 상실은 사회에도 전이될 수 있다. 불신 경향이 사회에 전이될 경우, 시민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사회 자본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진즉 밝혔어야 했다. 정부 기구나 조직 혹은 제도에 대해 불신이 만연하게 되면, 국가 운영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통령은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탈원전을 둘러싼 의혹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 의혹 역시 정부 기관에 대한 신뢰와 관련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입장도 대통령은 밝혔어야 했다. 신공항 관련 문제는 이른바 국책 사업에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국책 사업이란, 정권을 초월해서 국가가 장기적 안목으로 시행해야 하는 사업을 의미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이 사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김해 신공항 건설에 문제가 있다면, 왜 가덕도에 신공항이 건설돼야 하는지, 그리고 2016년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조사 결과는 왜 부정돼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통령은 이런 사안들에 대해 말을 않고 있으니, 대통령의 침묵에 대해 여러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대통령은 이제라도 침묵을 깨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역할이자 임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정 전반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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