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좁아진 은행 인턴, 변호사 스펙 우대

은행 디지털화, 대규모 신입 공채 사라져
인턴마저 디지털·전문직 스펙 우대받아
일자리 줄어드는 디스토피아..'나도 해당'
  • 등록 2021-09-04 오전 11:00:00

    수정 2021-09-04 오전 11:00:00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편리함’은 무조건 ‘선(善)함’으로 통할까요? 디지털 세상 속 우리가 잃게 된 것이 없나 생각해봅니다.

특히 금융의 디지털화, 플랫폼화가 은행권 취업을 준비하던 취업준비생에게는 눈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눈물이 비단 그들만의 ‘운 없음’으로 머물러야 할까요? 범디지털화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한테 해당되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금융의 디지털화와 맞물린 인간소외

금융권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 A씨. A씨는 지난 6월 모 시중은행의 인턴 채용 공고를 보고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힌’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금융권 취업 문이 워낙에 좁아져 인턴도 치열해졌는데, 우대 항목에서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기 때문입니다.

인턴을 뽑는데 기재된 우대 사항에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감정평가사, 변리사, 보험계리사 최종 합격자 및 자격증 소지자 항목이 있었습니다. A씨는 “이런 자격증이 있는데 뭐하러 은행 인턴까지 알아보겠냐”고 했습니다.

모 시중은행의 인턴 우대 사항 (홈페이지 캡처)
요새 은행들의 디지털화에 따라 디지털 관련 전문 자격증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정보보안기사’ 등입니다. 이과생도 공을 들여 공부를 해야 겨우 따는 자격증인데, 문과생은 언감생심인 셈입니다.

이 은행에 대해서 탓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우대 사항일 뿐, 절대적인 합격의 요건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은행 인턴십 취업도 이렇게나 높은 스펙을 요구하게 됐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은행들 입장에서 ‘주판알 튕기던’ 시절처럼 수백명의 신입행원들을 고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 수천명이 하던 역할을 이제 은행 앱이 하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이젠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고도, ATM 앞에 들리지 않아도 웬만한 송금부터 계좌 이체, 신용대출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조만간 은행들은 비대면 주택담보대출도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앉아서 이 모든 게 되니 편리한 세상이 된 건 분명합니다.

은행이 모바일화되면서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소외된 존재’가 됐습니다. 은행 경영진이 보기에는 ‘비용’이 된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슬픈 현실일 수 있습니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이는 신입 공채로도 드러납니다.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19를 이유로 은행들은 신입 공채 문을 닫거나 소수 디지털 인력을 수시로 뽑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예전처럼 창구 앞에 앉아서 손님을 맞는 은행원을 대규모로 뽑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입니다.

올해 상반기 신입 공채를 진행한 은행은 IBK기업은행(250명)과 NH농협은행(350명)이 거의 유일합니다. 이외 은행들도 직원들을 새로 채용했지만 디지털 능력이 있는 인력에 한정했습니다. 문과생들이 과거처럼 은행에 입행하는 길은 사실상 막혔거나 매우 좁아졌다는 뜻입니다.

시중은행 근무 경력으로 핀테크 업계에 이직한 한 직원은 선배로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있는 인력과 영업점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신입 공채는 관심권 밖으로 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경력을 요구하면서 경력 쌓을 기회를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입 말고 이미 은행에 자리를 잡은 행원들의 사정은 어떨까요? 이들 본인도 ‘캄캄하다’고 합니다. 정년까지 있으면서, 혹은 그전에 목돈의 퇴직금을 들고 나가는 게 옛말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실제 은행들은 영업점과 내부 행원들의 수를 줄여왔습니다. 2017년 중반을 기점으로 올해 6월까지 줄어든 4대(KB국민·신한·하나·우리) 시중은행의 정규직 일자리 수는 5281개(각 은행 사업보고서 기준)에 달합니다.

이 기간 일자리의 질은 더 안 좋아졌습니다. 4대 시중은행 기간제(비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1077명 더 늘었습니다. 전체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그나마 늘어난 건 비정규직이라는 얘기입니다.

혹자는 핀테크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줄어든 수만큼 늘지 않는다는 게 ‘아쉬움’입니다. 2017년 이후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직원 수는 1100명 정도로 늘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취업 동아리 소속 학생은 “취업 준비는 수년에 걸쳐 한다”면서 “갑작스럽게 채용문이 닫히면 이를 준비하던 취준생의 노력은 허사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클 수 밖에 없다”면서 “암담하다”고 말했습니다.

남의 일 같으신가요?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에 보면 노동이 사라진 ‘디스토피아’ 스토리(핫샷 편, 2011년)가 나옵니다. 모든 일이 디지털·자동화되다보니 그 안의 인간은 사이클을 돌리는 일을 합니다. 거기서 나름의 수입을 올리고, 이는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됩니다. 간단하게 먹을 것을 사고 각종 미디어를 즐깁니다.

블랙미러 ‘핫샷’ 편 화면 캡처
이들의 탈출구는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해서 스타가 되는 길입니다. 자전거를 돌리던 하류층에서 상류층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디지털화가 되고 인공지능(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도 ‘스타를 향한 열망’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니까요.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이 허무맹랑하게만 보일까요? 스웨덴에서 한가지 재미난 프로젝트가 진행됐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형광등만 끄고 키면 월급 260만원을 주는 일자리를 평생동안 보장해주는 프로젝트입니다.

스웨덴의 IT도시 예테보리에서 진행되는 이 실험은 ‘노동이 사라진 시대’를 가정한 프로젝트입니다. 노동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면서, 인간이 살면서 누려야할 기본 소득이 어디까지인지 보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202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도 남의 나라 일 같으시나요?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리 주변을 봅시다. ‘고용없는 성장’은 이미 우리나라 산업현실을 대표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잠재성장률이 2%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디지털화까지 급속히 진행되면서 ‘우리가 해야할 노동’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 정체성을 조직내 역할로 대변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 사회에서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자기소개를 해보세요. 어떤 단어부터 먼저 나올까요?)

급속한 디지털화라는 과정 속에 우리는 잃는 게 무엇일까요. 치열하게 경쟁을 해서 피라미드 끝의 최정상을 차지하는 게 결국 사는 길일까요?

디지털은 소수의 성공한 자들에게는 부의 집중이란 선물을 안겨줬지만, 대다수에게는 상대적인 빈곤감을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역대급 실적에 대한 과실을 소수 경영진과 주주들이 가져가는 것처럼요.

그들은 어쩌면 하루하루 분투하듯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보면서 웃고 있을지 모릅니다.

성공한 실리콘밸리 사업가로 통하는 일론 머스크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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