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드컵 원정 16강 감격, 이제는 K리그 차례다

  • 등록 2010-07-01 오후 6:36:13

    수정 2010-07-01 오후 6:36:13

▲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이룬 한국 축구대표팀.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이데일리 SPN 이석무 기자] 한국 축구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홈에서 이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는 또 다른 큰 성과였다.

우리 선수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세계의 강호들을 상대로 투혼을 발휘했다. 5000만 국민들은 한국 선수들의 활약에 하나가 돼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한국의 월드컵 4경기를 통해 축구 축제를 즐긴 셈이다.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해외파들의 활약이었다. 맞는 얘기다. 프리미어리그 최고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 중인 박지성을 중심으로 박주영, 이영표, 이청용, 기성용, 차두리 등이 유럽 무대에서 쌓은 경험은 이번 월드컵 대표팀의 큰 힘이 됐다. 언론지상에서도 해외파들의 맹활약에 주목하며 한국 축구의 해결책으로 ‘어린 유망주들의 해외진출’을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도 감출 수 없다. 월드컵 16강이라는 공이 해외파들에게 모두 돌아가는 모양새다. 한국 축구의 성공을 축하하는 분위기에 아쉽게도 K리그가 낄 자리는 없는 듯 하다. 적어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났을 때는 한국 축구를 살리기 위해 K리그를 사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마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 축구팬들의 관심은 K리그 경기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K리그 관중은 100% 이상 늘어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에도 60%의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축구의 르네상스 시대가 찾아온 듯 했다. 하지만 르네상스는 결코 길지 않았다. K리그에 대한 관심은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유행처럼 돼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월드컵에는 그런 목소리 마저 들리지 않는다. 해외진출 선수들의 활약에 가려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는 듯한 분위기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을 응원하기 위해 거리로 100만명의 인파가 쏟아졌지만 정작 K리그에 대한 관심은 처참할 정도다. 월드컵 직전에 열린 K리그 컵대회는 거의 관중석이 텅텅 빈 가운데 치러졌다. 거리응원에 나온 수많은 ‘**녀’들 가운데 국가대표 골키퍼 정성룡이 어느 팀 소속인지 아는 이가 있기나 할까.

사실 남아공 월드컵 16강의 성과는 해외파들만의 결실이 아니다. 월드컵에 출전한 23명의 대표선수 가운데 K리그에 소속된 선수는 무려 13명이나 된다. 해외파 가운데 박지성을 제외하면 모두 K리그를 거쳐간 선수들이었다.

이번 월드컵을 주름잡았던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은 불과 2008년까지 FC서울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K리그에서의 활약이 밑거름이 됐기 때문에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었고 해외무대도 밟을 수 있었다.

세계 축구의 강호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프랑스는 이번 월드컵에서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축구는 부진은 일시적인 것이지 결코 축구 자체가 몰락한 것이 아니다. 이들 국가들은 최고의 자국리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부활할 발판을 가지고 있다.

‘제2의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이 나올 무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아니다. 바로 우리 나라 선수들이 뛰고 있는 K리그다. K리그가 부실하면 대표팀도 부실할 수밖에 없다. 대표팀이 부실하면 월드컵에 나갈 수도 없고 거리응원도 할 수 없다. 과연 현재 K리그 팀 수가 15개라는 것을 아는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까. 월드컵이 열린 올해의 경우에도 정작 프로축구 중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다.

팬들에게 ‘축구발전을 위해 K리그를 봐달라’라고 감정적인 호소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이후 축구의 재미를 만끽한 팬들은 K리그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월드컵에서 수준 높은 축구를 봤던 팬들은 K리그의 후진적인 운영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월드컵 이후 관중석을 가득 메웠던 팬들은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갔다.

K리그는 분명 팬들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월드컵을 계기로 지어진 경기장 시설은 세계 어느 리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팀도 프로야구의 거의 2배 수준인 15개나 된다.

지난 해 포항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올해도 아시아 챔스리그 8강에 4팀이나 진출했다. 리그 수준만 놓고보면 아시아 최정상이다. 프랑스 신문 ‘르퀴프’는 “K리그가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리그급의 경기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제 발로 찾아오는 관중들을 쫓아내는 K리그의 고질적인 병폐들이다. 심판ㆍ감독 간 뿌리깊은 불신, 승부욕에만 사로잡힌 구단, 난투극을 방불케 하는 몸싸움, 특정팀 서포터스의 맹목적 응원 등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K리그 경기장을 보면 판정시비로 얼룩지는 경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감독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심판 때문에 졌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가슴 아픈 부분은 실제로 심판들이 그런 비난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심판들이 제대로 경기를 컨트롤하지 못하니 선수들은 더욱 거칠어지고 경기는 자주 끊긴다. 선수나 벤치의 불만은 고조되는 것이 당연하다.

서포터스들의 삐뚤어진 응원문화도 개선돼야 한다. 관중석에선 부모와 자식들이 함께 편안하게 경기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일부 서포터스들의 거친 행태는 눈살을 지푸리게 한다. 욕설과 비난이 난무한 경기장에 어떤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겠는가. 프로야구에 왜 여성과 아이들 관객들이 대거 늘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거기에 투명하지 않은 K리그 구단의 운영도 하루 빨리 바뀌어야 한다. 지난 해 외국인선수 영입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불명예 퇴진했던 모 감독의 사건은 K리그 밑바닥에 자리하는 구태의연한 악습을 잘 보여준다.

그밖에도 아마축구 유망주들이 K리그 대신 해외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제도 역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어린 유망주들이 드래프트제를 피하기 위해 J리그 등 외국행을 택하는데 이는 오히려 선수들의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또 공개되지 않는 불투명한 연봉체계와 구단의 수익성을 방해하는 주먹구구식의 운영도 K리그가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K리그를 제발 봐주세요’라고 호소하고 부탁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제는 수준 높은 경기력과 특별하고 새로운 볼거리로 자연스럽게 관중들을 축구장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이는 월드컵 16강 보다도 훨씬 중요한 일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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