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 멀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TV 관찰 예능 출연한 혜민, '풀소유' 논란 시끌
달라진 세상, 종교·수행도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나치게 많이 보여준 TV, 종교의 본질 어지럽혀
수행·방송, 대중 위로하려면 한발짝 멀어져보길
  • 등록 2020-11-19 오전 6:00:00

    수정 2020-11-19 오전 6:00:00

[정덕현 문화평론가] “삶에서 어떤 식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사람들과 공감하는 법을 전해 드리고자 나왔습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온앤오프>에 출연한 혜민 스님은 자신이 방송에 나온 이유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날 방송은 그 의도대로 끝나지 않았다. 방송에 비춰진 스님의 삶은 대중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무(無)소유’가 아닌 ‘풀(full)소유’라는 이야기까지 나왔고, 마침 현각 스님이 자신의 SNS에 올린 일갈은 정신이 번쩍 드는 죽비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현각 스님은 속지 말라며 혜민 스님을 ‘연예인’, ‘사업가’, ‘배우’일 뿐이고 심지어 ‘도둑놈’, ‘기생충’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 매체는 혜민 스님이 미국 시민권자로 삼청동의 단독주택을 본인 명의로 샀다가 1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팔았다는 보도를 냈고, 이 보도는 ‘건물주 논란’에 불을 붙였다. 부동산 그것도 건물주라는 단어는 현재 대중들이 가장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란 점에서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결국 혜민 스님은 SNS를 통해 공식 사과문을 냈다.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이제 대중선원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고 수행 기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현각 스님도 곧바로 입장을 번복하는 글을 올렸다. 현각 스님은 혜민 스님과 70분 간 통화를 했다며 “사랑과 존중, 감사로 가득한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또 “혜민 스님의 순수한 마음을 존중”하며 “아름다운 인간으로 존경한다”고도 했다. 결국 현각 스님의 일갈과 혜민 스님의 사과 그리고 다시 이어진 현각 스님의 입장 번복으로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런데 도대체 지금껏 베스트셀러 작가, 유명 강연자 그리고 방송인으로서도 다양하게 활동해온 혜민 스님이 어째서 이번에 갑자기 이런 논란에 직면하게 됐을까. 물론 현각 스님의 일갈이 그 논란을 폭발시킨 면은 있지만, 그 이전에 <온앤오프>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그 도화선이 되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지금까지 혜민 스님이 방송에서 보였던 강연자나 스님으로서의 멘토 역할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은 스님의 일에서 벗어난(오프) 사생활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송에 등장한 스님의 일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먼저 스님은 절에서 지내지 않았다. 대신 남산타워가 보이는 빌라에서 지냈다. 눈 뜨면 시작하는 독경에 이어진 참선도 남달랐다. AI스피커로 서비스되는 명상용 오디오를 익숙하게 켜 놓고 참선을 했다. 아침 공양을 하는 방식도 달랐다. 태블릿PC로 백종원 동영상을 보며 순두부찌개를 만들어 맛나게 먹는 모습은 우리네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멋진 한옥이 양옆으로 펼쳐진 골목길을 지나 스님이 출근한 곳 역시 절이 아닌 공유오피스였다. 그 곳에서 스님은 직원들과 함께 명상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하고 있었다. 노트북을 꺼내놓고 앱에 들어갈 명상 음악과 음향을 체크하고, 직원들과 식사를 하며 회의를 하는 모습은 여느 스타트업 대표를 연상케 했다.

물론 혜민 스님의 이런 일상은 자신의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수행하는 과정이었다. 스님의 말대로 옛날에는 사람들을 일일이 모아 법문을 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을 공유할 수 있는 도구(SNS)가 생겼으니 이를 통해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실제로 종교의 역할은 근본적으로는 같지만, 그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또 수행의 방식도 속세를 벗어나 자신을 갈고 닦아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길이 있는 반면, 대중들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도 있다. 그러니 혜민 스님의 방식이 우리가 늘 보던 모습과 다르다고 이상하게 볼 일만은 아니다.

또 이번 논란의 중심에 자리한 ‘남산타워가 보이는 집’도 우리 같은 속세의 입장에서는 부동산 가격 얼마라는 현실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스님에게는 그저 산이 보이는 집일 수도 있다. 물론 혜민 스님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진실은 본인밖에 알 수 없지만, 일반론으로서 스님들이 모두 똑같은 방식이 아닌 저마다의 방식으로 수행의 길을 가는 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종교의 본질을 어지럽히는 일이 아니라면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온앤오프> 같은 사생활을 꺼내놓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다는 건 다른 이야기다. 방송은 때로는 보여주려는 내용과는 엉뚱한 내용이 주목되기도 하고, 이에 따라 출연자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시청자들에게 비춰지기도 한다. 게다가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는 관찰카메라 형식은 지극히 사적인 내용들까지(어쩌면 사적인 내용들을 더더욱) 끄집어내려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혜민 스님이 <온앤오프> 같은 관찰카메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아가 <온앤오프>가 다양한 이들의 일상을 다각도로 비춰주겠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해도, 보통 스님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스님의 사생활까지 담아내려 한 것 역시 너무 과한 욕망이 아니었을까.

혜민 스님은 나름의 방식으로 종교인으로서의 수행을 해온 것이라 말해왔지만 이번 논란을 통해 그것이 과연 지혜로운 방식이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을 게다. 그런데 지금처럼 힘겨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진짜 종교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사실 강연장이나 방송에 나와 많은 조언을 해주고 명상 앱을 만드는 일도 의미 있겠지만, 그보다 속세에서 물러나 무소유의 삶을 묵묵히 실천하며 살아가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은 더 큰 위로를 받지 않을까. 방송도 마찬가지다. 큰 공감은 때론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볼 때 더 커질 수 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시인과 촌장은 ‘풍경’이라는 노래를 통해 전한 바 있다. 너무 모든 것들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그래서 때론 그 흐름에 따라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제자리를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종교도 종교의 위치에서 방송도 방송의 위치에서 제자리를 찾아갈 때 우리네 삶은 비로소 그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홈런 신기록 달성
  • 꼼짝 마
  • 돌발 상황
  • 우승의 짜릿함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