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 삶과 죽음의 변증법

심사위원 리뷰
서울연극제 연극 '죽음의 집'
죽음에 내재된 의미와 삶이 미치는 영향
  • 등록 2020-06-04 오전 6:00:00

    수정 2020-06-04 오전 6:00:00

[황승경 평론가]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만약 죽어도 숨을 쉬고 말할 수 있다면? 이 모호한 가정으로 연극 ‘죽음의 집’(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5월 2일~13일)은 시작한다. 죽음과 삶이라는 환상과 현실의 틈바구니 경계선을 오가며 연극 ‘죽음의 집’은 죽음에 내재 된 의미와 삶이 미치는 영향을 되새긴다. 연출자 윤성호는 삶과 죽음을 엇바꾼 무대 서사를 관습적 사고와 통상적 논리를 뛰어넘는 역설적 방식으로 세밀하게 전개 시킨다.

상호는 친구 동욱과 영권 그리고 영권의 아내 문실을 집으로 초대한다. 맨 처음 도착한 동욱에게 상호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고는 자신이 사고로 이미 죽었다고 실토한다. 뒤이어 당도한 영권부부까지 자신들의 자살을 고백한다. 동욱은 죽은 자들과 함께 한 공간에 남겨진다. 죽었다는 세 사람은 형상이 희미한 유령의 넋이 아니다. 살아 숨 쉰다. 그들은 죽은 후 살아 있었다는 감각을 ‘그냥 죽지 않은 느낌’으로 표현한다.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은 이내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죽음의 집’의 비밀을 알게 된 동욱에게는 선택의 몫이 남겨진다. 여기서 ‘죽음=삶의 끝’이라 인습적으로 인지하는 객관적 세계와 ‘죽음≠삶’이라는 연극의 무의식적 형상은 서로 충돌해 객석에 질문을 던진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의 집은 상호의 집이다. 연극 속 죽음의 집은 스릴러 영화처럼 집에 들어간 모든 산 사람에 죽음의 올가미를 씌우는 장소가 아니라, 죽은 사람들 혹은 죽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삶을 고민하는 공간이다. 오히려 그들은 집 밖 사람들이 죽은 채 살아 있는 흉내를 낸다고 설파한다.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기대와 죽음에 대한 반감이 내재 된 관객은 색다른 간접현실을 직면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만큼 이들은 죽음을 대하는 자세도 달랐다. 죽음을 원했느냐 원치 않았느냐 하는 주관이 달랐던 것처럼 죽음 세계에 대한 상황인식이 죽은 자마다 판이하다. 죽음을 해탈의 찬스로 받아들이는 영권, 그리고 죽음을 이전과 다를 것이 없는 고단한 투쟁으로 직시하는 문실 사이에서 상호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해체되지 않고 모순적으로 살아가려 한다. 연극은 ‘죽음의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여러 가능성을 내포시켜 죽음을 단절된 상실로 한정치 않는다. 또한, 살아 숨 쉬는 시간도 도식된 희열이 아니라 이면에 존재하는 잉여로 완성된 절정으로 수렴한다. 죽음의 집에 살고 있는 죽은 채로 사는 자들, 생을 사는 죽은 자들을 따라 죽음을 탐험하지만, 역설적으로는 우리가 믿고 싶었던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작품은 되묻고 있다.

얼핏 보면 만만치 않게 난해할 것 같은 연극이지만 ‘죽음의 집’은 군더더기 없이 세련되고 메시지는 분명하다. 맞부딪히는 상충된 삶의 법칙을 간결하면서도 수려하게 제시해 작가 고(故) 윤영선의 깊이가 수월하게 읽혀진다. 연극이 던지는 물음표가 가시질 않는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숨 쉬고 살고 있는가.

연극 ‘죽음의 집’ (사진=서울연극협회)
연극 ‘죽음의 집’. (사진=서울연극협회)
연극 ‘죽음의 집’. (사진=서울연극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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