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의 창과 방패] 진보도 보수도 오만하면 무너진다

  • 등록 2020-12-03 오전 7:12:50

    수정 2020-12-03 오전 7:12:50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국민들 인내에도 한계가 왔다. 지난해는 조국 사태로 한 해를 넘기더니 올해는 추·윤 갈등으로 날을 지샌다. 각자 명분과 논리를 들이대지만 국민들 보기엔 한심하다. 국정 에너지를 한 곳에 쏟아도 모자랄 판국이다. 그런데 해를 넘겨 싸우니 염증날 수밖에 없다. 국민들 눈에는 추 장관이 일방적으로 윤 총장을 찍어내는 모양새다.

그제는(1일) 많은 일들이 있었다. 법원은 윤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한 명령을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법무부 감찰위도 윤 총장 손을 들어줬다. “징계청구, 직무배제, 수사의뢰 처분은 부적정하다”고 판단했다. 둘 다 절차상 중대한 흠결이 문제가 됐다. 또 추 장관에 반발해 법무부 차관은 옷을 벗었다. 대검 조남관 차장도 징계를 철회하라며 추 장관 조치에 제동 걸고 나섰다.

정부·여당은 법원과 감찰위가 지적한 ‘절차적 흠결’을 무겁게 직시해야 한다. 추 장관은 설익은 조치를 남발함으로써 사태를 키웠다. 이러다 검찰개혁 정당성마저 실종될까 우려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속하게 후임 차관을 임명했다. 징계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윤 총장은 자진 사퇴할 생각이 없다. 법적 대응까지 밝힌 상태여서 혼돈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조국, 추·윤 사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권력과 검찰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이다. 누구든 살아 있는 권력을 거스르면 이렇게 된다는 확실한 경고다. 국민들 눈에는 무리한데, 집권여당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은 선이고, 그래서 가로막는 모든 세력은 악이다. 강준만 교수(전북대)는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라는 책에서 권력의 속성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명도 안 된다.” 그는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을 언급했다. 엘리너 루스벨트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패배보다는 승리로 인해 망가지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강 교수는 승리에 취한 나머지 오만함으로 처참하게 몰락한 정치사를 실감나게 설명한다. 먼저 진보의 몰락이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종전 47석에서 152석으로, 과반을 넘기며 크게 이겼다. 그러나 환호는 짧았다. 2년 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1곳만 건졌다. 한나라당은 12곳을 싹쓸이했다. 정당 득표율 또한 한나라당(53.8%) 절반에도 못 미치는 21.6%였다. 결국 100년 정당을 내세웠던 열린우리당은 창당 3년 9개월 만에 사라졌다. 그리고 2007년 12월,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500만 표 차이로 집권했다.

이제는 보수가 몰락할 차례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보수는 200석(한나라당 153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경악했지만 냉정한 현실이었다. 역시 축배는 짧았다. 권력의 적은 역경이 아니라 풍요임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당 지위를 내주었다. 이후 박근혜 탄핵, 2017년 5월에는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2018년 지방선거 또한 자유한국당은 16개 광역단체장 중 2곳(더불어민주당 14곳)을 건지는데 그쳤다.

두 진영이 걸어온 족적은 데깔코마니처럼 겹친다. 지난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범 진보진영을 포함해 200석을 얻었다. 묘하게 보수가 200석을 차지했던 18대 총선을 떠올리게 한다. 기우에 그치길 바라지만 지금처럼 일방통행을 고집한다면 다음 수순은 내리막길이다. 숱한 역사 속에서 물은 배를 띄우기도하지만 뒤집기를 반복해 왔다.

지금처럼 진영논리가 득세하고, 건강한 내부 비판을 외면한다면 민심은 어디로 튈지 장담하기 어렵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이란 책에는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 심리학, 경영학 교수 세 명이 100년 동안 히말라야를 오른 등반대 5,104팀을 분석했다. 이 결과 위계질서가 강한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온 팀들은 정상까지 더 많이 올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소통부재, 닥치고 앞으로만 간 조직은 큰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반증이다.

권력 행사는 산을 오르는 것과 다른 문제다. 오만한 권력은 국민을 눈물 흘리게 하고, 나라를 망가뜨린다. 정권교체는 당연한 결과물이다. 전 정권 탓, 야당 탓, 보수언론 탓, 진영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 한 의원은 “판사들이 움직여줘야 한다”며 집단행동을 유도했다고 한다. 더는 어지러운 추·윤 싸움을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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