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그리고 법률]노후에도 내 뜻대로 재산을 관리하려면

  • 등록 2019-11-23 오전 8:27:00

    수정 2019-11-23 오전 8:27:00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 70대 김순례씨는 매일 같이 오는 부동산 투자 홍보 문자를 지우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다. 20년 전 2000만원만 투자하면 도로가 개설될 예정인 땅 주인이 될 수 있고, 곧 보상금으로만 1억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획부동산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부동산의 말만 믿고 산 땅은 맹지에 공유자만 백여 명에 달했다. 부동산은 자신들도 피해를 입었다며 이번에는 확실한 곳이라면서 다른 땅을 소개했다. 맹지도 아니고, 공유자도 2명에 불과했다. 개발제한구역인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곧 해제될 것이라는 부동산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김씨는 기획부동산으로부터 총 2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그 뒤 김씨는 부동산 투자에는 발길을 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기획부동산들은 집요하게 연락해왔고, 일확천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달콤한 말로 현혹했다.

김씨는 나이가 들어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혹시 치매라도 걸리면 남은 재산마저 송두리째 잃을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다 못한 김씨의 자녀들이 적어도 어머니가 거주하는 아파트만이라도 안전하게 지킬 방법이 없겠냐고 필자를 찾아왔다. 필자는 아파트를 신탁하는 것을 추천했다.

신탁은 자신(위탁자)의 재산 관리 처분 등을 위해 믿을 수 있는 사람(수탁자)에게 그 재산의 소유권을 이전하고, 수탁자는 그 재산을 맡긴 사람(위탁자)과 협의한 바에 따라(신탁목적) 그 재산을 관리 처분하며, 그에 따라 발생한 수익은 위탁자가 지정한 자(수익자)에게 귀속시키는 법률관계를 의미한다.

자기 재산을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관리 처분하게 하려면 그 권한을 위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구태여 소유권을 이전하면서까지 신탁을 이용하는 이유는 위임의 경우보다 편리하고, 안전하며, 활용방안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먼저 신탁이 설정되면, 위탁자 또는 수탁자의 채권자는 신탁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발생한 채권의 실현을 위해 신탁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 도산절연(倒産截然)효과는 신탁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만약 김씨가 자신의 아파트를 신탁한 이후, 또 다른 사기피해를 입어 큰 빚을 지게 되더라도, 김씨의 채권자는 위 아파트에 대해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

둘째, 신탁에 의해 소유권이 이전될 경우, 대외적으로 신탁재산의 소유자는 수탁자가 되어 법률관계가 간명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김씨가 아파트 관리를 자녀에게 위임하였다고 생각해보자. 자녀가 아파트 관리를 위해 어떤 사무를 할 때마다 김씨가 작성해 준 위임장과 (경우에 따라서는) 김씨의 인감증명서, 자녀의 신분증 등을 구비하여 매번 거래 상대방에게 자신의 대리권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의심 많은 상대방이라도 만난다면 거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높다. 그에 반해, 아파트를 신탁한 경우라면, 대외적으로 수탁자인 자녀가 소유자이기 때문에 전술한 것과 같은 번거로운 일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단지 내 재산의 관리를 타인에게 맡겼다는 사실만으로 발생하는 번거로움과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이다.

셋째, 신탁은 내 재산을 관리해주는 사람의 부정행위를 차단하는 데에도 장점이 있다. 관리하고자 하는 재산에 신탁을 설정할 경우, 수탁자는 신탁재산을 자신의 재산과 분리 독립하여 관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가 아파트를 신탁하는 경우, 부동산등기부등본에는 등기원인은 `신탁`으로, 권리자는 소유자가 아닌 `수탁자`로 표시되며, 신탁계약서가 `신탁원부`라는 형태로 별첨됨으로써 수탁자의 다른 재산과 구별된다. 나아가 신탁법에서는 수탁자에게 엄격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넷째, 신탁은 당사자가 구성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위탁자가 본인이 사망할 경우 그 신탁재산의 수익자를 배우자 자녀 등 다른 사람으로 지정함으로써 유언과 같은 효과를 발생시키는 유언대용신탁도 유용하다. 일본의 경우 손자녀의 대학 등록금, 양육비, 결혼자금 등을 지원하기 위한 신탁도 존재한다. 증여세 비과세가 적용되어 2016년 3월말 기준으로 1조엔(약 10조원) 이상이 신탁되어 있다고 한다. 지적장애 범죄피해자의 지원을 위한 신탁, 후견인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성년후견제도 지원 신탁,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별수요신탁 등 신탁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궁무진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노후에도 안전하면서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재산관리 수단으로 신탁이 주목받고 있다. 미리 자신의 재산을 신탁하면서 재산 관리 처분 방법에 대해 지시를 해두면, 이후 판단능력이 떨어진 뒤에도 그 뜻대로 자신의 재산이 관리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배광열((裵光烈)변호사는

△변시 3회 △사단법인 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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