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디지털금융그룹을 이끌고 있는 한동환 디지털혁신총괄전무(CDIO)는 2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오픈뱅킹이 본격화하면 시중은행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픈뱅킹은 은행 결제망을 핀테크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제도로, 앱 하나만 깔면 모든 은행계좌의 송금이나 이체가 가능해진다. 은행으로서는 경쟁이 한층 격화하는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 전무는 오픈뱅킹 시대가 열리면 핀테크의 역습에 고전했던 은행이 유리한 지형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과거 토스나 뱅크샐러드같은 핀테크에서 받던 수수료 수입은 포기해야 하지만 얻는 것도 상당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토스나 뱅크샐러드가 복잡한 인증을 없애고 다른 은행권의 계좌까지 한번에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며 인기몰이를 했는데, 앞으로 하나의 은행 앱에서도 전 은행권 계좌로 송금이나 이체가 가능해졌다는 게 대표적이다. 실제 10월말 오픈뱅킹이 시범적으로 시작된 이후 은행에서 한 달간 총 551만 계좌(1인당 2.3개)가 등록됐다. 총 이용건수는 4964만건으로 이중 출금이체가 116만건, 잔액조회가 3972만건으로 집계됐다. 반면 토스 앱 이용자는 주는 추세다.
한 전무는 “토스나 뱅크샐러드 같은 핀테크기업은 아직 수익 모델이 없어 마케팅비용을 추가 투자를 통해 메우는 식”이라면서 “은행은 계좌만 뚫어도 미래가치가 나오는 고객을 확보할 수 있으니 고객을 귀찮게 하지 않고 수익원을 발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핀테크는 각종 마케팅을 통해 앞에서 뭔가를 깎아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객으로서는) 나중에 끊임없이 광고 스팸을 받아야하는 구조”라며 “진지하게 금융을 할 고객들이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는 “은행은 신뢰가 있고 핀테크는 고객의 정서를 안다. 금액은 얼마 안 된다고 해도 다른 의미를 담으면 고객 경험의 가치가 커진다”며 “핀테크는 은행 플랫폼을 활용해 고유의 상품으로 기업가치를 기우고, 은행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고객만족도를 높이는 ‘플랫폼생태계’를 만들겠다”고 했다.
한 전무 역시 빅테크와 쉽지 않은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봤다. 그는 다만 “네이버 같은 빅테크 기업의 공격을 쉽게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시장에서 걱정하는 것만큼 일방적인 게임이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KB를 포함한 금융권이 전문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디지털을 장착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 전무는 “눈에 보이는 경쟁자가 생기면서 직원들이 자극을 받았고 변화가 시작됐다”며 “인터넷뱅킹 분야에서 2017년까지만 해도 농협에 밀려 2위에 그쳤으나 2018년 농협과 카카오뱅크를 넘어선 1등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쟁자인 빅테크와도 협력할 일이 생기면 손을 잡을 계획”이라며 “동남아에 동반진출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