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의 문화재 읽기]근대를 밝힌 '전깃불'…이면엔 고종의 두려움 있었다

1887년 경복궁서 켜진 조선 최초의 전깃불
고종, 임오군란·갑신정변 등에 암살 걱정
보빙사의 제안에 에디슨 전기회사와 계약
  • 등록 2020-08-03 오전 6:00:00

    수정 2020-08-03 오전 8:14:18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1887년 경복궁 안쪽 깊숙한 곳, 건청궁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깃불이 켜졌다. 건청궁을 환하게 비춘 전깃불은 궁궐 외부뿐 아니라 내부도 밝히면서 밤까지 활동 시간을 연장해 왕실의 생활양식까지 변화시킨다. 본격적인 근대로의 진입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전깃불을 도입한 이면에는 어둠 속에서 암살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한 고종(1863~1907년 재위)의 근심이 있었다.

지난달 29일부터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新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에서는 조선 후기 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들을 대거 공개했다. 전시에서 도자기 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전시의 2부 ‘新왕실도자 수용 배경’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관람객을 맞이하는 형형색색의 ‘오얏꽃무늬 유리 전등갓’ 150점이다. 곽희원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사는 “1887년 경복궁에는 개화의 상징인 전기가 들어온 이후로 유리 전등갓을 씌운 전등은 경복궁, 창덕궁의 내·외부에 설치됐다”며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무늬 모양을 한 유리 전등갓을 대중에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홍색 오얏꽃무늬 유리 등갓(사진=국립고궁박물관)
고종은 12살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라 10년 동안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을 받았다. 1873년(고종 10) 드디어 흥선대원군의 하야로 왕의 친정체제가 마련되자 고종은 자립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며 경복궁 내에 건청궁을 지었다. 고종의 의지와는 달리 그의 앞길엔 여러 풍파가 계속 온다. 고종은 1876년 경복궁 화재로 3년 만에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1882년 신식군대와 차별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의 난인 임오군란을 겪는다.

이런 와중 1883년(고종 20) 미국을 방문한 보빙사 일행은 밤거리를 환하게 밝힌 전등을 본다. 민영익은 당시 “나는 암흑에서 태어나 광명 속으로 들어가 보았고 다시 암흑으로 돌아왔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1884년 조선으로 돌아와 전등 설비 도입을 제안했다. 같은 해 청의 내정 간섭과 개혁이 늦어짐에 불만을 품은 개화론자들이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키는 등 갑신정변 거센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던 고종은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와 전등설비 계약을 맺는다. 이후 1886년 11월 전등기사 매케이(McKay)를 초빙, 1887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등소를 완공했다. 당시 전기등소의 발전 규모는 양초 16개 밝기의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건청궁 내원과 향원정 내원에 아크등이 있고 담밖에는 전주와 전선이 있다(사진=한국전기박물관)
당시 고종의 불안은 황현의 ‘매천야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매천야록’에는 “임금은 임오군란 및 갑신정변 이래 가까이서 몰래 병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해 미리 피란할 계책을 세우고 있었다. … 또 밤을 이용해 소요가 많이 발생하므로 궁궐 내에 전등을 많이 켜서 새벽까지 훤하게 밝히도록 명했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전등을 도입한 후에도 고종의 불안은 잠재워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1887년 전기 운영과 설비를 책임졌던 매케이는 조선인 기수가 실수로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1895년에는 명성황후가 건청궁에서 어둠속에 결국 살해당했다. 이후 일본의 내정 간섭까지 심해졌다. 그리고 결국 1910년 조선은 멸망했다. 그럼에도 최초로 전깃불을 들인 조선의 시도는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경복궁 건청궁의 전깃불 도입은 베이징의 자금성, 일본의 궁성보다 빨랐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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