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간부가 중심이 되는 군대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 등록 2020-11-20 오전 6:00:00

    수정 2020-11-20 오전 6:00:00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지난 9월 초 국방부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직권조사에 의한 제도 개선 권고를 받았다. 제목은 ‘초급간부 자살 예방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였다. 이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2015~2019) 장병 자살 사건을 계급별로 분석한 결과, 장교는 연평균 8.4건, 부사관은 22.6건, 병사는 21.6건으로 나타났다. 인권위가 주목한 부분은 장교와 부사관을 포함하는 간부의 자살 사례가 연평균 31건으로 병사보다 1.5배나 많다는 점이다.

모집단 규모가 훨씬 작고 그래도 자유롭게 생활하는 간부들이 병사들보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역전현상은 2015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전인 2013년에는 병사 45명 대 간부 34명이었고, 2014년에도 40 대 27로 병사가 1.5배 정도 높았다. 그러던 것이 2015년부터 22명 대 35명으로 간부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전체 자살 규모는 줄었지만, 이 추세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병영문화 혁신으로 전반적인 군대 분위기가 좋아졌음에도 간부의 자살률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삶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간부들의 근무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병사들의 인권이 강조되는 만큼 간부들의 일은 많이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병사들에게 쉽게 시켰던 일을 이제 시킬 수 없다. 특히 군대 경험이 적은 초급간부의 경우 더욱 힘들다. 더 많은 역할을 기대하는 상급자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병사 사이에서 ‘고난의 행군’을 견뎌내야 한다. 기업처럼 싫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것이 군대다.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적 선택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살률은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대한민국 군대가 안고 있는 깊은 문제에서 발현되는 증상이다. 우리 몸도 어딘가에서 심각한 염증이 있을 때 열이 나게 마련이다. 이때 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발열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해열제로 증상만 속인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인권위가 권고한 방안은 병영생활전문상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 향상, 민간의 심리상담프로그램 활용, 자살예방 교육 강화 등이다. 엄밀히 말해 사실상 해열제 수준의 처방들이다. 단기적으로 필요한 조치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차제에 대한민국 군 간부들, 편하게 말해서 직업군인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현재 병력 구성에서 간부 비중은 36% 수준이다. 국방개혁 2.0이 제대로 진행될 경우 간부 비율은 60%가 넘어갈 것이다. 이러한 구성의 변화는 질적인 차원의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새로운 조직 원리와 교육인사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 군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과도한’ 계급 중심적 조직원리라 생각한다. 사회는 ‘나이’나 ‘실력’으로 돌아가는데 오직 군대만이 ‘계급’이 ‘깡패’인 구조로 작동한다. 고졸 출신의 부사관이 대학생 병사를 지휘해야 하는 문제가 단적인 예다. 초임 소대장도 고참 병장과 노회한 부사관을 상대해야 한다. 어떤 수준의 사람이든 상관의 지시는 감히 거스를 수 없다. 진급과 장기복무를 결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이와 능력과 계급이 불일치하면서 많은 인간적인 문제를 만들어낸다. 기존의 장교 양성과정과 의무복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어색한 대면과 무리한 지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은 역할에 기반을 둔 분업조직으로 군대를 재인식하는 것이다. 목숨을 건 전장에서 계급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이등병이나 후방 벙커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사단장이나 같은 전우임에는 분명하다. 그들은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간부 중심의 군대는 직업군인이 중심이 되는 군대를 의미한다. 그 직업의 본질은 ‘전문성’이다. 자신의 계급이 무엇이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인정받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아직 우리 군이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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