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가정의 달]은퇴 후 경비직 찾는 아빠들…갑질에 피멍

이달 10일 갑질당하던 경비원 숨진 채 발견
"좋은 이웃이었는데 주민 갑질에 극단적 선택"
젊은층 "우리 아버지, 어머니 갑질당할까 걱정"
  • 등록 2020-05-30 오전 9:19:01

    수정 2020-05-30 오전 9:19:01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행복해야 할 가정의 달이지만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달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으로부터 ‘갑질’과 폭행을 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된 것이다. 고인은 평소 업무에 성실했고 아파트 단지 내 어린 학생들에게 ‘공주님’이라고 인사를 건넬 만큼 주민들과 가까이 지내왔지만 한 주민의 갑질로 생을 저버렸다.

이후 고인이 두 딸들 앞으로 사랑한다고 편지를 남긴 사실이 알려져 먹먹함을 더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진 후 일하러 나서는 부모를 보는 자녀들의 마음은 심란하기만 하다.

10일 숨진 채 발견된 경비원 최희석씨가 근무하던 경비초소 모습. (사진=뉴스1)


경비·미화원으로 나서는 부모 바라보는 자녀들 “갑질당할까 걱정”

지난 10일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최희석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씨는 아파트 주민에게 꾸준히 폭언, 폭행 등 갑질을 당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소식을 접하는 여러 젊은이들의 심정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경비원이나 미화원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의 조사 결과 지난해 5060 퇴직자의 평균 퇴사 연령은 54.5세였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2.7세인 점을 고려하면 대부분 퇴직자가 생계수단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특별한 기술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를 찾다보니 경비원이나 미화원을 많이 선택한다. 지난 2018년 KDB미래전략연구소에서 나온 ‘고령자 고용의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60세 이상 직종별 고용보험 신규 취득자 중에선 가장 많은 업종은 청소·경비(31%)였다.

취업준비생 김현우(28)씨는 직장에서 퇴직한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다시 일하기 시작한 아버지를 보면 불안하다. 김씨는 “아버지와 같은 연령대인 고 최희석씨가 입주민에게 욕설을 듣고 폭행당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데 우리 아버지도 비슷한 일이 있는데 가족들에게 이야기 못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며 “인터넷에서 경비원이 머무는 초소 내부 사진을 봤는데 너무 열악해 경악스러웠다. 나라도 빨리 돈을 벌어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지만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0대 직장인 여성 A씨는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어머니가 걱정스럽다.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A씨의 어머니에게 ‘당장 그만둬라’ 등 소리를 지른 사실을 알고서부터다. 그 주민은 일부러 아파트 단지에 음식물 쓰레기를 뿌리기까지 했다. A씨는 “어머니가 당한 갑질을 신고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차별적 과시 문제…법과 자성 필요

‘갑질 논란’은 잊을 만 하면 되풀이되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갑질 문제가 ‘차별적 과시’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누군가의 지위나 경제적 조건이 자신보다 밑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마구 대해도 된다는 심리다.

하지만 이런 문화·정서적 경향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법과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서울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김인준씨는 “을의 위치인 경비노동자의 처지를 악용해 갑질하는 아파트 주민도 없지는 않다”며 “열악한 경비원의 지위나 처우에 대한 법적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글픈 이야기지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 아직까지 평가하고 차별하는 집단 정서가 작용하니 업무와 책임, 권리 등을 명확히 정하는 법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오래 걸리겠지만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차별적 과시를 갑질로 행사하고 있는지도 자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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