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제약사 중역이 몇 년 전 정부와의 소송에서 이긴 일화를 들려줬다. 승소한 제약사는 수 억원이 든 소송 비용을 그냥 감내했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무심히 되물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게 정부는 ‘슈퍼 갑’의 위치에 있다. 허가와 취소를 보건 당국이 결정하는 유일한 업종이다. 제약·바이오 업체들은 절대적 을의 위치에서 정부의 눈치만을 보는 구조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44개 제약사는 포괄적으로 환수율 20%에 합의했다. 콜린제제의 재평가 임상이 실패로 귀결될 경우 식약처로부터 임상시험 계획서를 승인받은 날부터 적응증이 삭제될 때까지 처방액의 20%를 건보공단에 되돌려준다는 내용이다.
정부의 입장도 일견 이해는 된다. 별다른 효과가 없는 약물을 쓰는데 국민의 세금을 보조해줬으니 그 이득분을 돌려놓으란 논리다. 처음 100%에서 시작한 환수율 협상은 거듭 낮아지다가 20%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업체의 항변도 타당하다. 제약사가 ‘콜린제제의 유효성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판매에 나선 것은 아니라서다. 재평가 임상시험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임상실패를 가정하고 처방액의 일정 부분을 돌려달라는 것 역시 다소 황당한 요구다.
그간 보건 당국은 재평가 임상실패 의약품에 대해 환수를 요청한 적이 없다. 이번이 첫 사례다. 제약사들이 환수협상 취소소송, 집행정지, 헌법소원, 행정심판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를 쓰는 것도 전례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정부와 제약사 간 소송은 소송비용은 물론 양측의 신뢰가 깨지는 소모적 싸움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