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일 청와대를 향해 또 독설을 퍼부었다. 지난 3월 3일 우리 정부를 “저능하다”고 비난한 지 약 석달만에 남북관계 전면에 재등장한 것이다. 이번에는 탈북단체의 대북전단(삐라) 살포에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언급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파장은 셌다. 정부는 김 부부장의 담화 뒤 약 4시간만에 계획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남북긴장을 초래하는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률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백두혈통인 김여정 부부장이 대남노선을 총괄하는 핵심축 역할을 맡아, 당내 실질적인 권력 2인자에 올라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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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이방카, 정상회담의 씬스틸러(주연보다 돋보이는 조연) 등 갖은 별칭을 쌓은 김 부부장이 석달만에 내놓은 대남담화는 권력자답게 표현이 거칠고, 이전보다 파격적이었다. “나는”이라는 1인칭 화법을 쓰는가 하면, “똥개” “쓰레기” 등 격한 표현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번 김 제1부부장 명의의 담화는 올 3월9일과 같은 달 22일(대미담화) 이후 세 번째이자, 대남 담화로는 두 번째다. 특히 직접 ‘최악의 사태’까지 거론하는 등 북한 주민이 보는 ‘노동신문’에 실릴 만큼 정치적 위상이 더 높아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특유의 비유와 직설 화법을 써가며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면서 “이런 행위가 방치된다면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초강수를 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여정이 대남 관계를 관장하는 메신저 역할을 맡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여정이 김 위원장의 대리인으로서 대외 발언을 하는 셈”이라며 “이는 남북 정상의 합의 이행을 포함한 남북관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짚었다.
북한에서 정치적 권위가 가장 높은 ‘백두혈통’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김 부부장의 향후 보폭이 더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북한 최고위층 중 우리 정부 인사들과 가장 가까운 인물로 꼽혀 왔다. 지난 2014년부터 전면에 본격 등장한 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 차례 정상회담(2018년 4월27일, 5월26일, 9월18~20일)에 빠짐없이 배석하는 등 김 위원장의 ‘최측근’ 구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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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19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남측에 대북전단 살포 규제의 법제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남북관계의 중대 변수로 부상할 조짐이다.
특히 대북비방 전단은 북한의 아킬레스건(치명적 약점)이다. 이에 북한은 남북 관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카드로 대북전단을 꺼낸 의도도 읽힌다.
지난 이전 국회에서도 대북 전단살포 사전승인법이 발의된 적이 있으나, 여야 대치로 입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남북 정상 간 합의 이행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과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과 생업 보장을 위해서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김 제1부부장이 경고한 대로 남북관계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갈 수 있다”며 남북관계 험로를 예상했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북한이 이번 담화를 통해 남북대화 재개 여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북한이 우리 정부의 돌파 의지와 역량을 계속 테스트하고 있다. 해묵은 논쟁거리인 대북 전단지 살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남북관계가 달려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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