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대상 이 작품]바지·구두에 잠재된 인간본성을 응시하다

- 심사위원 리뷰
국립오페라단 '빨간 바지' '레드 슈즈'
창작오페라 2편 1주일 간격으로 무대에
한국 오페라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 써
  • 등록 2020-09-17 오전 6:00:00

    수정 2020-09-17 오전 6:00:00

[이나리메 작곡가·음악감독] 국립오페라단에서는 올해 중극장 규모의 창작오페라 두 편을 제작했다. ‘검은 리코더’의 작곡가 나실인과 작가 윤미현은 70~80년대 부동산 개발을 소재로 한 ‘빨간 바지’(8월 28~2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를, 작곡가 전예은과 함께 가사 작업을 한 김연미는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를 모티브로 개작한 ‘레드 슈즈’(9월 4~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를 무대에 올렸다.

국립오페라단 ‘빨간 바지’의 한 장면(사진=국립오페라단).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작품의 질감은 다르다. 그러나 고전적인 음악극이 취하는 극성이 강한 사랑이야기나 영웅적 서사보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이야기와 소재로 인간 본성의 심연을 응시한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 오페라의 향방에 대한 창작자의 고민과 시도가 뻬곡히 담겨있는 작업이었다.

윤미현 작가 특유의 관찰력과 위트로 치환하는 재능, 나실인 작곡가의 풍부한 감성과 정서가 살아있는 선율과 다양한 양식과 기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안정적인 오케스트레이션(‘빨간 바지’), 전예은 작곡가와 학부 때 작곡을 전공한 김연미 작가의 지루할 틈을 한 순간도 주지 않는 톡톡 튀는 감성과 색채감(‘레드 슈즈’)은 동시대 관객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피해갈 수 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원래 계획한 편성의 오케스트라 반주를 불가능하게 했다. 제각기 의도하지 않은 다른 편성으로 수정이 거듭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초연 버전이 탄생했다. 불완전한 편성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작곡가의 안타까움, 마지막까지 힘겨운 수정이 계속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두 작곡가의 판이하게 다른 개성은 빛을 발했다.

국립오페라단 ‘레드 슈즈’의 한 장면(사진=국립오페라단).
1주일 간격으로 창작오페라를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우리나라 오페라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음악이 유입된 이래 작곡가와 작가들은 어쩌면 무모하게 보이는 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다양한 층위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2010년 국립오페라에서 시작한 창작공모 사업인 ‘MOM 프로젝트’를 필두로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카메라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오페라 부문, 그리고 각 지역에서 열정을 앞세워 만드는 작품들까지 크고 작은 무대들이 탄생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바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빨간 바지’와 ‘레드 슈즈’의 초연은 무관중 영상 공연과 녹화 중계로 관객 모니터 앞에서 펼쳐졌다. 준비한 쪽도 기다린 쪽도 이 공연이 기획될 당시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 생긴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채팅창과 댓글, 공연장의 음향효과가 박수와 환호를 대신했다. 새로운 플랫폼의 손님을 맞이하며 오페라단 관계자가 공연 중 관객과 함께 채팅창에서 호응의 대화를 나눴고, 관객들끼리의 수다도 이어졌다. 공연장 안의 보이지 않는 공기와 호흡이 활자로 변신했다. 그런 기운이 무대 위 주인공들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됐는지 화면 안의 예술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연했다. 빈 객석이라도 지키고 설 무대가 있다는 것이 지난한 2020년에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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