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에게 집은 지옥이었다…검찰이 밝힌 ‘일상적 학대’

검찰, ‘정인양 양부모’ 결심 공판에서 여러 증거 제시
‘물건 잡듯 들어 올리는 영상’, ‘몸무게 추이’ 등 공개
아이 사망 날엔 ‘어묵 공동구매’…메시지 삭제 정황도
양모 측 “손바닥으로 세게 때리긴 했지만, 밟진 않아”
  • 등록 2021-04-15 오전 8:23:19

    수정 2021-04-15 오전 8:23:19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엄마에게 폭행을 당해 아픈 몸을 이끌고 등원한 유일한 안식처인 어린이집에서 몸을 회복한 다음, 저녁때가 돼서 다시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을 가정으로 돌아가자고 찾아온 아빠를 피해자는 얼마나 원망했을지 또는 얼마나 무서워했을지 그 마음을 짐작해본다.”

검찰은 지난해 입양 이후 지속적인 학대로 생후 16개월 여아 정인(입양 전 본명)양을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어머니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면서 정인양에게 가정은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를 뒷받침하고자 정인양이 받아온 일상적 학대의 모습을 추정케 하는 다양한 증거들을 법정에서 공개했다.

입양한 생후 16개월 된 딸을 학대치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모씨가 지난해 11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물건 잡듯 들고, 안 먹는다고 때리고…檢, 증거 제시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재판장 이상주) 심리로 지난 14일 진행된 정인양 양어머니 장모(35)씨와 양아버지 안모(38)씨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장씨가 일상적으로 저지른 학대의 정황이 담긴 증거를 제시했다. 다만, 장씨는 지난 공판과 마찬가지로 폭행과 학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아이를 숨지게 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검찰이 제시한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의 증거에선 장씨가 목이나 한쪽 손목만 잡아서 물건을 잡듯 정인양을 들어 올리고, 엘리베이터 안 좁은 손잡이에 정인양을 앉혀둔 채 자신의 머리를 손질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검찰은 “정서적 학대를 넘어서 장씨가 피해자에 대한 신체적 완전성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또 정인양의 몸무게 추이를 토대로 정인양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입양 전이었던 지난해 1월 아이 몸무게는 8.9kg이었는데, 그해 9월엔 아이가 생후 5개월 수준인 8.5kg에 불과했다”며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따져 봐도 아이 몸무게는 성장하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지 줄어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씨는 피고인 신문에서 이른바 ‘이유식 거부 시기’여서 정인양이 제대로 밥을 먹지 않아 몸무게가 줄어들었다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검찰은 지난해 9월 양부 안씨가 장씨에게 보낸 “(아이가) 씹는 거에 트라우마 생긴 건 아니겠지?”라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증거로 제시하며 정인양이 밥을 먹지 않게 된 계기가 장씨의 학대에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결국 검찰이 재차 장씨에게 “(정인양이) 씹지 않는다고 폭행하거나 학대한 적이 없느냐”고 물어보자 장씨는 “아이를 때린 적이 있고, 화도 냈다”며 “열심히 만든 음식을 먹지 않아 반항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고 트라우마가 자신의 행위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고 진술했다. 그는 사망 당일 정인양을 폭행한 것도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양부모의 학대 끝에 숨진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이’의 양부모의 결심 공판이 열린 지난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입구에서 시민들이 양모가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호송차를 향해 손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상적 방치…사망 날에도 ‘어묵 공동구매’ 참여

검찰은 이들 양부모가 정인양을 내버려두는 상황도 수시로 반복됐다고 말했다. 최대 4시간까지 집에 홀로 있기도 했다. 검찰은 “일반적인 보호자라면 아이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며 “피해자 건강과 안전에 대한 관심도 없고, 무책임하게 아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정인양이 사망하던 날에도 방치는 이어졌다. 장씨는 사망 당일 ‘정인양 양팔을 흔들고 배와 등을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친 뒤 아이를 들어 올려 세게 흔들다가 떨어뜨렸다’고 진술했는데, 검찰은 “치명적인 폭행 이후 상태가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첫째 아이 어린이집 등원을 시키며 피해자를 방치한 점을 돌이켜보면 장씨에게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정인양의 사망 이후 장씨 모습에도 주목했다. 장씨는 의사에게서 정인양이 숨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온라인 커뮤니티 어묵 공동구매 글에 댓글을 달았다. 또 사망 다음 날엔 다른 아기 엄마를 만나 첫째 아이와 놀고, 추가 어묵 공동구매를 추진하기도 했다. 3차 아동학대 신고 이후와 압수수색 당일 수백건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삭제한 정황도 드러났다.

아울러 장씨는 아이 사망 이튿날 지인에게 “하나님이 천사 하나가 더 필요하셨나 봐요”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자신의 행위로 아이가 사망했는데도 ‘하나님’ 핑계를 대면서 마치 운명으로 돌리는 태도를 보였다”며 “범행을 부인하고,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양부모의 학대 끝에 숨진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이’의 양부모의 결심 공판이 열린 지난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입구에서 시민들이 양모가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호송차를 향해 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양모 측 “때리긴 했지만, 발로 밟지 않아…고의 없어”

장씨는 일부 학대와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검찰 주장처럼 아이를 발로 밟은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에게 소리도 많이 지르고, 머리나 어깨, 배도 많이 때렸다”면서도 “주먹으로 때리거나 아이를 던지거나 밟은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또 사망 당일 내버려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땐 그렇게 위중한 상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장씨는 정인양을 숨지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사망 당일에도 아이가 힘들어했지만, 아이를 미워하거나 잘못되길 바란 점은 맹세코 없다”며 “상상도 못할 일이라 (아이가)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어 학대 사실을 남편에게도 숨겼으며 남편에게 배신감을 안겨줘 미안하다고도 울먹였다.

장씨 측 변호인은 “장씨가 아이를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거나 살인의 고의를 가진 적은 없다”며 “염치없는 주장인 건 알지만, 장씨는 당시 (아이의) 사망 가능성을 몰랐던 것 같다”고 변론했다. 변호인은 “장씨가 악마로 묘사되고 있지만, 악한 심성의 사람이 아니다”라며 다른 재판과 형평성을 고려해 선처해달라고 재판부에 부탁했다.

한편 장씨는 지난해 6월부터 정인양을 상습 폭행·학대하고, 그해 10월 13일 정인양 등 쪽에 강한 힘을 가해 정인양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또 양부 안씨에 대해선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부인의 방치와 폭행으로 정인양의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다는 걸 알면서도 부인의 기분만을 살피면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 등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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