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시장에 대한 극약처방

  • 등록 2005-08-26 오전 9:00:34

    수정 2005-08-26 오전 9:00:34

[뉴욕=이데일리 안근모특파원] 약은 잘 쓰는 경우에나 약이지, 잘 못 쓰면 독이 된다. 하지만 상태가 많이 안좋을 때는 독이 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독한 약을 쓰기도 하는데, 극약을 처방해야하는 경우까지 있을 수 있다.

하와이 주의회가 설정한 휘발유 도매가격 상한선도 일종의 석유시장에 대한 극약처방이다. 하와이 뉴스가 나온 이후로 미국에서 일고 있는 논란의 초점은 `과연 시장이 극약을 써야할 만큼 위중한 상황이냐`는데 모아지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가격에 대한 통제는 자칫 시장을 망쳐버릴 수 있고, 결국에는 당초 기대했던 소비자의 이익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음달부터 호놀룰루의 도매상들은 보통 무연 휘발유 가격을 1갤런당 2.1578달러 이상 책정할 수 없으며 세금을 포함하더라도 약 2.74달러는 넘을 수 없다. 지난 24일 기준으로 호놀룰루의 보통 무연 휘발유 평균 소매가격은 갤런당 2.761달러로 도매가격보다 2센트 높을 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규제환경에서 시장 참가자들은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까. 기자가 도매상이라면 일단 도매 가격을 상한선까지 즉각 인상할 것이다. 가격규제를 주창한 주의원들이 시인했듯히 하와이의 석유시장은 경쟁이 약하기 때문에 어려울 게 없다.

도매가격이 오르면 주유소들은 최소한의 마진을 챙기기 위해 소매가격을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인상할 것이고, 소비자들의 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도매가 상한선은 다른 지역의 가격동향을 참조해서 매주마다 조정될 예정이지만, 제한가격이 석유 생산자의 이윤을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낮게 책정된다면, 공급이 최소한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역마진이 나는 석유 생산자 입장에서는 적게 팔 수록 손해를 덜 보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가는 과거 석유파동때와 같은 주유소의 자동차 행렬을 구경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도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고, 수급 불균형은 장기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될 것이다.

하와이 주의회가 30년만에 다시 내놓은 극약처방은 일종의 실험과 같은 것이어서 시장 밖의 사람들은 결과를 흥미롭게 지켜볼 것이지만, 실험대상이 된 현지의 주민들 입장에서는 기대반 걱정반일 것이다.

하와이의 실험에 대해 기자가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우리도 유사한 경험을 해 봤기 때문이다. 사채금리 규제 정책이 그 것이다.

국회가 일률적으로 정한 사채 금리의 상한선은 일종의 인상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했다. 다수의 서민들이 필요이상의 이자를 물어야 했다.

위험도가 높아 보이는 사람들은 아예 사채돈 구하기가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규제가격이 공급자의 원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채 공급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서민들은 신용카드에 더욱 매달렸다.

유가급등으로 인해 석유업체들의 이익이 대폭 늘어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업체들이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있다면 이익의 일부는 소비자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환원되고 있는 셈이다. 불완전 경쟁으로 인해 업체들이 부당한 이득을 얻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경쟁당국이 현행법을 제대로 활용해 시정하면 된다. 자유 시장경제에서는 돈을 많이 번다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극약 처방은 정상적인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 뒤에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때 내리는 일종의 비상조치다. 아무리 자유시장 경제라고 해도 비상조치가 필요한 경우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순서가 분명해야 한다. 하와이 주의회가 휘발유 관련 세금을 대폭 인하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기에 하는 얘기다. 경제 전체에 미치는 비용과 이득을 장단기적으로 잘 계산해야 함도 물론이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대중과 임명권자의 가벼운 인기를 얻기 위해 이런 저런 규제유혹에 곧잘 빠져드는데, 그 와중에 대중들은 골병들기가 십상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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