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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산산조각 별곡

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 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 등록 2021-01-12 오전 6:00:00

    수정 2021-01-12 오전 6:00:00

정호승의 시 ‘산산조각’은 진흙 덩어리가 장인의 손을 거쳐 존귀한 불상이 되었다가 벽에서 떨어져 사금파리로 산산조각 나는 과정을 그렸다고 느꼈다. 보통사람 눈으로 보면 실수로 불상을 깨트린 아쉬움에 젖을 것이다. 부처님 눈으로 보면 진흙이나 불상이나 산산조각 난 사금파리나 하등 다를 까닭이 없으니 애태우지 말라는 위안의 뜻이 스며있었다. 같은 시인의 시 ‘벗에게 부탁함’에서 “나를 욕하더라도. 올 봄에는 ‘저 봄비 같은 놈, 저 꽃 같은 놈이라고 욕하여 다오”라는 구절처럼 그침 없는 애정과 관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탐욕에 찌든 인간이 아무 데서나 함부로 ‘산산조각’을 뇌까리지 말아야 한다는 설익은 생각이 스쳤다. 다시 생각하니, 시를 음미하는 데 있어, 중국역사 미의 상징 서시(西施)든, 그녀를 닮고 싶어 안달했던 이웃집 추녀(醜女)든 무슨 상관있단 말인가. 깨달음을 이루면 모래알이 진주가 되던, 진주가 모래알이 되던 다를 바 없으니 탐욕에 빠질수록 이 시를 더 자주 음미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살이 풍파에 시달려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시를 읽으면서 못된 생각을 한 내가 바보가 아닌가.

거물들은 몰라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었던 자유당 시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던 특무대장의 관심법(觀心法)이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했었다. 그에게 불려가 몇 마디 나누다가 “임자! 마음이 이상해요”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사상 불순자가 되어 산산조각 나야 했다. 그 시절에는 조무래기 악동들도 심심하면 애들 무릎을 꿇리고, 관심법을 써서 “너, 나 욕하고 다녔지!” 예단하고 나쁜 놈으로 몰아 코피를 터트렸다. 어이하여 애나 어른이나 힘만 생기면 생사람 잡는 독심술을 자랑하는 것일까. 가정에서 인성교육을 잘못 받은 탓이 아니겠는가.

A는 몇 명 뽑지 않는 행시에 합격하자 사귀던 여인을 멀리하고 부호의 딸과 결혼하여 용이 되어가는 길을 호기 있게 가고 있었다. 청운만리 여정은 10월 유신이 선포되면서 얼떨결에 산산조각이 났다. 술에 취해서,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긴급조치’와 ‘독재자’를 욕하다가 엿듣고 있던 독심술사(讀心術師)에게 끌려가면서 꿈은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 되었다. 잡혀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후로는 현실과 몽상 세계를 넘나드는 듯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갑자기 찾아와 실력 없는 (고시)동기도 장관 자리에 올랐다며, 대선 캠프에 들어가 50억원 정도 내고 총리를 하고 싶다는 황당무계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산산조각 났던 출셋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 의식구조까지 산산조각 난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이 들었다.

코로나 공포에 더하여 많은 시민들을 우울하게 만든 2020 ‘법·검(法·檢)파동’에 따른 피로증후군이 빨리 치유되는 길은 없을까. 불가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번뇌를 칼처럼 도려내어 치유하는 지혜를 ‘법검(法劍)’으로 부른다. 이런저런 핑계보다는 원칙이 작동하여야 중생의 번민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희랍신화 정의의 여신 디케(Dike)의 칼날이 날카로워야 차별이 없어져 갈등을 해소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법의 정신’을 쓴 몽테스키외 (C-L. Montesquieu)는 다양성을 가진 ‘인간을 자유롭게 하려면 행정·입법·사법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조건이라 하였다. 복잡다기한 사회에서는 권한 집중이 아니라 분산에서 원칙과 지혜가 생긴다. 만약 삼권분립이 선언에 그치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다면, 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창의력의 원천인 자유가 산산조각 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만약, 관심법 때문에 자신과 나라를 산산조각 낸 궁예가 환생한다면 어떻게 말할까. “관심법을 남용하다가는 너나없이 더불어 산산조각 날 수 있으니 멀리 보고 살라”고 할 것이다. 최근에도 일각에서 관심법이 작동할 뻔했었다. 겁나는 장면이었는데, 불행인지 그나마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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