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결정적장면]아내 골프채로 때려 죽였는데…살인죄 면한 이유

前 김포시의장, 불륜 아내 때려 사망케한 사건
항소심, 원심 징역 15년 깨고 징역 7년 선고 '이목'
"살해 고의성 입증 안돼…죽도록 방치한 것도 아냐"
골프채 두고 "미리 준비된 것 아니고, 하체만 가격"
  • 등록 2020-06-06 오전 10:00:00

    수정 2020-06-06 오전 10:00:00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아내가 세번째 불륜에 빠졌다. 증거가 필요했던 남편은 아내의 차에 몰래 소형 녹음기를 설치했다가, 자신을 비아냥대고 자신의 재산까지 탐내는 아내와 불륜남의 대화까지 듣게 됐다. 녹음을 들은 그날 오후 남편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술을 마시며 이를 추궁하다가 아내를 주먹과 골프채로 폭행,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

남편은 다름 아닌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 세간에 알려진 이른바 ‘골프채 아내 살해’ 사건이다.

잔혹한 방법으로 아내를 때린 가정폭력은 용서할 수 없는 중대 범죄일뿐더러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 유 전 의장에 대해 살인죄 적용은 불가피해보였다. 처음 사건을 수사한 김포경찰서는 당초 상해치사 혐의로 유 전 의장을 구속했다가 이후 살인으로 죄명을 바꿔 검찰에 송치했고, 인천지검 역시 살인 혐의로 유 전 의장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항소심까지 이른 재판 과정에서 살인 혐의에 대한 다른 판단이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이같은 살인 혐의를 인정하고 유 전 의장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이같은 원심을 파기하고 살인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고 유 전 의장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살인이 아니라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 이번 주 서초동 결정적 장면이다.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이 지난해 5월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 김포경찰서를 나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는 살인할 ‘고의’가 있었는가

서울고법 형사합의1부 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3일 유 전 의장의 항소심 선고에 앞서 다소 긴 판결 이유를 설명하고 나섰다. 이번 선고를 앞두고 정 부장판사 역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정 부장판사는 “유 전 의장에게 상해의 고의를 넘어 미필적으로나마 아내를 살해할 범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살인을 하려는 고의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면 유죄가 의심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설명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살인의 고의성은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준비된 흉기의 유무·종류·용법 △공격 부위와 반복성 △사망의 결과발생 가능성 정도 등 범행 전후의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살인 부른 불륜?…폭행 후 죽게 방치한 걸까?

정 부장판사는 먼저 “범행의 동기와 범행 후 행동에서 유 전 의장에게 살인 고의성이 없었다는 정황이 다소 있다”고 지적했다.

유 전 의장은 2000년과 2007년 이미 아내의 두 차례 불륜을 겪었고 지난해 또 다른 남자와의 불륜 사실을 알고도 아내를 용서하고 결혼생활을 지속해 온 만큼 불륜이 살인의 동기가 되지 않았다고 봤다. 실제로 유 전 의장은 세 번째 불륜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도 아내와 자주 전화를 했고, 범행 직전 결혼기념일에는 아내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정 부장판사는 “유 전 의장은 아내가 만취한 상태에서 깨진 소주병을 들고 자해하겠다고 위협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는데, 범행 현장에서 깨진 소주병이 발견됐고 유 전 의장의 양 손에 날카로운 물체에 베인 상처도 발견됐다는 점에서 자해 시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폭행 이후 유 전 의장이 아내를 죽도록 방치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 전 의장은 모친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고, 범행 당일 오후 6시 모친이 귀가 예정이었음에도 범행을 은폐하려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단지 아파하는 아내를 침대에 눕히고 더러워진 아내의 옷을 갈아입힌 뒤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는 정도였다. 이후 아내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느낀 유 전 의장은 119구급대에 신고하기도 했다.

특히 아내의 사망 원인은 외상에 의한 이차성 쇼크인 것으로 파악됐는데, 의료인이 아닌 유 전 의장이 사망을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학적 소견도 뒷받침됐다. 외상에 의한 이차성 쇼크란 구타로 인해 발생한 광범위한 멍에 의해 순환혈액량이 감소해 주요 기관의 기능에 장애가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한 법의관은 ‘의료인들도 잘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아 일반인이 이를 예측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전경.(이데일리DB)


◇그렇다면 골프채까지 휘두른 것은 살인 의도가 아닌가?

범행 당시 유 전 의장이 골프채를 사전에 준비해 아내에게 휘둘렀다면, 이에 더해 골프채 헤드 부분으로 아내를 때렸다면 살인 혐의를 피치 못했을 것이다.

다만 정 부장판사는 해당 골프채는 사전에 준비된 것도, 또 헤드로 아내를 때리지도 않았다고 봤다.

정 부장판사는 “가족들의 진술에 따르면 유 전 의장은 평소 골프채 1~2개를 주방 또는 현관 근처 벽에 세워뒀으며, 범행에 사용하기 위해 골프채를 미리 준비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범행 당시 주방에는 식칼, 깨진 소주병 등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물건들이 손에 쉽게 잡힐 만한 거리에 있었는데, 유 전 의장에게 살해의 범의가 있었다면 위와 같은 물건들을 사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여러 법의관의 소견에 비춰 아내의 몸에 골프채 헤드 부위로 맞은 상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정 부장판사는 “아내의 하체 부분에 막대기로 맞았을 때 생기는 중선 출혈이 발견되는 등 유 전 의장은 골프채의 막대기 부분을 회초리처럼 이용해 아내를 때린 것으로 보인다”며 “유 전 의장이 살인의 범의를 갖고 골프채로 아내를 때렸다면 손잡이를 잡고 헤드로 아내를 내리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중형은 불가피

다만 정 부장판사는 상해치사의 권고형인 징역 3~5년보다 무거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가정폭력일뿐더러 죄질 역시 매우 나쁘다는 이유다.

정 부장판사는 “가정폭력은 어떤 이유나 동기에 의한 것이든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다. 아내의 온몸을 주먹, 발, 골프채 등으로 때려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것으로 그 죄질과 범행 정황이 매우 나쁘다“며 ”비록 유 전 의장에게 살인의 범의는 인정하기 어렵지만 소중하고 존엄한 아내의 생명을 앗아간 유 전 의장에게 상해치사 범행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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