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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이종욱(두산)의 가을' 하면 두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그가 화려한 주루와 결정력 있는 한방을 때려냈을 때가 아니다. 이종욱은 두번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을 뿐이다.
2007년 SK와 한국시리즈 6차전, 그리고 2009년 SK와 플레이오프 5차전. 두산의 마지막 타자는 모두 이종욱이었다. 이종욱이 삼진을 당하며 경기도, 시리즈도 두산의 패배로 끝났다.
두번 모두 승부는 일찌감치 결정이 된 뒤였다. 이종욱이 설사 그 타석에서 안타를 때렸더라도 승부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종욱은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끝까지 상대를 물고 늘어지며 최선을 다했다. 승.패와 상관 없이 말이다.
특히 지난해의 마지막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스코어는 14-3. 9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종욱은 8구째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을 당했다. 2스트라이크 이후로는 방망이를 더욱 짧게 잡고 커트를 해내며 끝까지 펼친 승부였다.
누가 봐도 별 의미 없는 타석이었다. 차라리 초구 빨리 치고 짐 싸는 것이 맘 편할 수도 있었다. 이종욱이 특별한 이유다. 그는 첫 타석과 똑같이 집중하고 똑같이 노력했다.
이종욱은 그런 선수다. 포기나 대충은 그의 야구에선 없는 단어다. 마지막 승부가 가려질 때까지 모든 힘을 다한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선수다.
이종욱의 투혼은 잠든 듯 했던 두산의 2010년 가을도 다시 깨워내고 있다. 화려한 말솜씨나 드러난 액션은 없지만, 그의 눈빛과 열정은 말 없이도 무언가를 묵직하게 전해주고 있다.
두산은 우승을 꿈꿨던 팀이다. 하지만 3위가 되며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준플레이오프부터 치른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두산의 가장 큰 약점은 박탈감이었다.
실제로 선수단 내에선 그런 분위기가 읽혀졌다. 큰 경기를 많이 치러 본 여유는 느껴졌지만 가을 잔치를 시작한다는 설레임은 없었다.
이종욱은 달랐다. 그는 1차전 첫 타석에 들어설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기고 싶은 열망이 강하게 풍겨 나왔다.
그리고 3차전. 이종욱의 방망이에서 홈런이 터져나왔다. 1,2차전을 모두 패한 뒤 1회에만 2점을 빼앗긴 두산이었다. 패배의 그림자가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종욱의 홈런 이후 두산 벤치는 달라 보였다. 안타 하나 볼넷 하나에도 박수가 터져나왔고 득점엔 환호성이 터졌다. 꼭 이기고 싶어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지나친 오버 해석이 아니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4차전 승리 후 "3차전부터 선수들이 벤치에서 뭉쳐있는 모습 보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여러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선수들이 잘 넘겨줬다"고 말했다.
두산이 당장 눈 앞의 5차전서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알 수 없다. 만에 하나 플레이오프에 나서더라도 힘겨운 승부는 계속될 것이다. 이미 체력적으로는 어려움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한가지 있다. 이종욱은 타석에서, 그리고 그라운드에서 마지막까지 있는 힘을 모두 끌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열정은 두산이 마지막까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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