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1일 “폭동과 약탈을 막기 위해 모든 연방 자산과 군대를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간다. 폭력 진압이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 취할 수 있는 조치다. 하지만 다음 말에서 피폐한 정신 세계가 엿보인다. “전문적인 무정부주의자와 안티파(극좌파 단체)가 개입해 테러를 부채질하고 있다.” 귀에 익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5.18 당시 독재정권이 들이댄 주장과 판박이다. 그들은 북한 지령을 받은 불순분자에 의한 폭력시위로 몰아갔다. 그리고 김대중을 주동자로 구속했다. 폭력적인 진압에 반발한 시위였음에도 외부 탓으로 돌렸다. 미래통합당 전신인 한국당, 새누리당, 한나라당은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신봉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순분자에 의한 광주사태’라는 말로 희생자들을 욕보였다. 지만원은 아예 1번 광수, 2번 광수 번호를 붙여가며 북한군 소행으로 단정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다른 곳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정신상태가 온전한지 싶다. 무정부주의자나 안티파로 책임을 돌리는 의도는 다름 아니다. 핵심 지지층을 의식해서다. 선거를 앞두고 백인 보수 유권자 결집을 꾀하기 위한 얄팍한 속셈이다. 세계 1등 국가 대통령치곤 한심한 정신세계다. 미국 대통령에게 애민(愛民)을 기대한다면 생뚱맞은 일일까. 측은지심은 동서양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애다.
시위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동조하는 경찰관들만 봐도 그렇다. 그들은 조지 폴로이드 죽음에서 보편적인 인간애를 찾고 있다. 일선 경찰관이 이럴진대 대통령이라면 더 큰 책임을 통감하는 게 옳다. 더욱이 다민족 국가, 미국에서 통합과 화합은 중요한 책무다. 2015년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대학 영결식장. 오바마 대통령은 추도사 도중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을 불렀다.
미국인들에게 이 노래는 국민 찬송가다. 흑인 노예선 선장이었던 영국 성공회 신부가 노랫말을 만들었다. 그는 잘못을 뉘우치고 감사하는 마음을 이 노래에 담았다. 당시도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흑인 9명이 숨졌다. 갑작스런 노래에 5500여 청중은 처음에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노래가 끝날 즈음에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쳤다. 오바마 대통령이 1분 동안 부른 이 노래는 미국을 하나로 묶는 화합의 메시지였다.
조지 폴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도 이런 유치함과 악마적 사고는 없는지 돌아본다. 또 여전히 광주를 부정하는 외눈박이를 경계한다. 오바마의 통합과 트럼프의 독선 사이에서 갈 길은 분명하다. 21대 국회가 문을 열었다. 국민 통합과 화합을 위한 많은 메시지가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