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임병식의 창과 방패]우리 안에 악마는 없나

  • 등록 2020-06-04 오전 7:00:00

    수정 2020-06-04 오전 7:00:00

[임병식 국회입법정책연구회 상임 부회장(전 국회 부대변인)]미국 대통령 트럼프를 정신 이상자로 여기는 세계 정상들이 적지 않다. 걸핏하면 세계 질서를 깨뜨리는 독단적인 행동 때문이다. 국내 정치 또한 좌충우돌이다. 미국 내에서조차 트럼프를 못마땅해 하는 이들이 많다. FBI 고위 관계자들을 지칭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도 그런 부류다. 그들은 트럼프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탄핵을 도모하기도 했다. 아침 신문을 읽다 트럼프 정신세계가 한참 망가졌음을 다시 확인한다.

조지 폴로이드 사건을 대하는 인식 수준이 그러하다. 사건은 단순하다. 백인 경찰이 흑인 시민을 살해한 것이다. 공권력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명백한 살인이다. 동영상을 본 미국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 때문에 폭력적인 진압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폭력 양상을 띠고 있다. 그만큼 분노는 거세다. 그런데 대통령 트럼프는 여기에 불을 질렀다.

트럼프는 1일 “폭동과 약탈을 막기 위해 모든 연방 자산과 군대를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간다. 폭력 진압이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 취할 수 있는 조치다. 하지만 다음 말에서 피폐한 정신 세계가 엿보인다. “전문적인 무정부주의자와 안티파(극좌파 단체)가 개입해 테러를 부채질하고 있다.” 귀에 익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5.18 당시 독재정권이 들이댄 주장과 판박이다. 그들은 북한 지령을 받은 불순분자에 의한 폭력시위로 몰아갔다. 그리고 김대중을 주동자로 구속했다. 폭력적인 진압에 반발한 시위였음에도 외부 탓으로 돌렸다. 미래통합당 전신인 한국당, 새누리당, 한나라당은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신봉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순분자에 의한 광주사태’라는 말로 희생자들을 욕보였다. 지만원은 아예 1번 광수, 2번 광수 번호를 붙여가며 북한군 소행으로 단정했다.

미국 시민들이 들고 일어선 이유는 다름 아니다. 인권을 깡그리 무시한 폭력적인 진압에 대한 분노다. 백인 경찰은 숨을 쉴 수 없다는 절규를 무시하고 짐승처럼 다루었다. 시민들은 인종차별과 자신도 언제든 그런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처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라면 공권력 남용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는 게 순리다. 한국이라면 당장 경찰청장 파면 요구가 빗발쳤을 일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다른 곳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정신상태가 온전한지 싶다. 무정부주의자나 안티파로 책임을 돌리는 의도는 다름 아니다. 핵심 지지층을 의식해서다. 선거를 앞두고 백인 보수 유권자 결집을 꾀하기 위한 얄팍한 속셈이다. 세계 1등 국가 대통령치곤 한심한 정신세계다. 미국 대통령에게 애민(愛民)을 기대한다면 생뚱맞은 일일까. 측은지심은 동서양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애다.

시위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동조하는 경찰관들만 봐도 그렇다. 그들은 조지 폴로이드 죽음에서 보편적인 인간애를 찾고 있다. 일선 경찰관이 이럴진대 대통령이라면 더 큰 책임을 통감하는 게 옳다. 더욱이 다민족 국가, 미국에서 통합과 화합은 중요한 책무다. 2015년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대학 영결식장. 오바마 대통령은 추도사 도중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을 불렀다.

미국인들에게 이 노래는 국민 찬송가다. 흑인 노예선 선장이었던 영국 성공회 신부가 노랫말을 만들었다. 그는 잘못을 뉘우치고 감사하는 마음을 이 노래에 담았다. 당시도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흑인 9명이 숨졌다. 갑작스런 노래에 5500여 청중은 처음에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노래가 끝날 즈음에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쳤다. 오바마 대통령이 1분 동안 부른 이 노래는 미국을 하나로 묶는 화합의 메시지였다.

트럼프는 얼마 전에는 같은 공화당 조지W. 부시 전 대통령도 핀잔했다. 자신이 탄핵 위기에 있을 때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부시는 코로나19라는 공동 위협에 맞서 당파적 분열을 버리고 단결하자고 호소했다. 이에 트럼프는 “탄핵 때 그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옹졸한 대통령이다.

조지 폴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도 이런 유치함과 악마적 사고는 없는지 돌아본다. 또 여전히 광주를 부정하는 외눈박이를 경계한다. 오바마의 통합과 트럼프의 독선 사이에서 갈 길은 분명하다. 21대 국회가 문을 열었다. 국민 통합과 화합을 위한 많은 메시지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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