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시대의 약자를 향한 젊은 작가들의 시선

'여름의 빌라'·'내안의 4분33초'
타인과 나의 경계에 대한 섬세한 고민
"대다수의 삶은 침묵속에 이어진다"
  • 등록 2020-08-12 오전 6:00:00

    수정 2020-08-12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널리 알려진 찰리 채플린의 이 말은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을 관통한다. 치열한 경쟁이 일상인 사회에서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타인의 삶은 양극단으로 구분된다. 한없이 부러운 희극이거나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지독한 비극이다. 하지만 이들의 삶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멀리서 볼 때와 달리 대부분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문학계에서 주목하는 젊은 작가들은 비극으로만 보이는 이 사회의 가장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더 깊이 있게 바라봤다. 이서수 작가의 ‘당신의 4분 33초’(은행나무)와 백수린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 ‘여름의 빌라’(문학동네)가 그렇다.

‘당신의 4분 33초’는 좌절과 낙담이 몸에 밴 인물 이기동을 주인공으로 한다. 딱히 장래희망도 없고 공부도 못하는 이기동.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한 고민은 ‘공부 못하는 범생이로 남을지, 그래도 오토바이는 탈 줄 아는 날라리가 될지’였다. 망설이다 아무런 결론도 못 내고 공부 못하는 범생이로 남은 그는 20대가 돼서도 그저 그렇게 삶을 이어간다. 삼수 끝에 겨우 법대에 들어가지만 취직도 못하고 공무원인 아내와 결혼한다. 이런 이기동을 작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찬사를 받는 천재 전위 예술가 존 케이지의 삶과 병치시켜 대비를 극대화한다.

“시대와 불화한 천재라면 살아나가기가 힘들지. 나는 내가 시대와 불화한 둔재라고 생각할래. 그게 정신 건강에 나아”라고 ‘정신승리’를 하는 이기동의 모습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이기동의 삶이 조금 불운하게 보일지라도 결코 불행하진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서수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우리 인생에서 대다수의 음악은 침묵 속에서 연주된다는 것을, 귀를 기울여보면 소리가 아주 없진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고 적었다. 이서수 작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다.

‘여름의 빌라’는 백 작가가 현대문학상·문지문학상·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한 지난 4년간 발표한 단편 여덟 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백 작가는 책을 통해 선량한 호기심으로 나와 타인을 가르는 경계선들을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담아냈다. 이를테면 ‘전학생’ ‘아시아인’ ‘여성’처럼 모국에서든 이국에서든 환영받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화자들이 작가의 책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런 인물들을 통해 타자의 삶을 겉보기로만 예단하는 사람들의 삶 깊숙이 그들을 들여놓는다. 물론 타인을 가로지르는 경계는 쉽게 연해지지 않지만 이런 화자들을 통해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타인을 생각해보게 한다.

재개발지역에 불시착한 듯한 한 가족과 그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나’의 고독과 한계를 그려낸 ‘고요한 사건’, 어느 밤 힘겨워하는 노인을 돕는 착한 일이 초래한 비극으로 자꾸만 그날로 되돌아가는 한 남자를 그린 ‘아주 잠깐 동안에’에서는 타인이 돼보기를 경계해서 외로워지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책을 출간한 문학동네 관계자는 “백수린의 소설은 누구보다 기민하게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고 공존을 모색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두 권의 책은 주목받진 못해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위안을 준다. 흐트러짐 없이 각자의 인생을 밀고 나아가는 소설 속 화자들은 더 이상 여리거나 약하지만도 않다. 책을 읽다보면 다른 사람에 대해 쉽게 생각하고 결정 내리는 우리가 어떤 윤리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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