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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핫플] 고즈넉한 고택에서 선비의 기풍 느끼다

경북 영덕의 괴시리마을
영양 남씨 괴사파의 400년 세거지
대남댁, 물소화고택, 해촌고택 등
고려말 문신 이색 선생이 마을 이름 지어
  • 등록 2021-01-22 오전 6:00:00

    수정 2021-01-22 오전 6:00:00

괴시리마을의 담장길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경북은 선비문화가 강하게 반영된 고장으로 유명하다. 성리학 유파인 영남학파가 이곳에서 터를 잡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경북 체험마을 중에는 이런 선비문화와 기풍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가득하다. 경북 교촌마을이나, 영주 무섬마을 등이 잘 알려진 곳이다. 그중 영덕 영해의 괴시리마을은 그나마 덜 알려진 곳이다. 영해 일대는 대갓집이 많고 문중의 종가들이 즐비해 예부터 ‘작은 안동’이라 불렸다. 괴시리는 영양 남씨 괴시파의 400년 세거지다. 너른 영해의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에는 대남댁, 물소화고택, 해촌고택 등 전통 한옥들이 흙담을 끼고 옹기종기 맞붙어 있다. 세상이 변해도 쉽게 변하지 않는 보석같이 숨겨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목은이색기념관 가는길에 바라본 괴시리마을


괴시리 전통마을로 찾아가는 길. 동해안 3대 평야 중 하나인 영해평야가 먼저 마중한다. 드넓은 영해평야를 마치 앞뜰처럼 펼쳐놓은 괴시리마을. 딱 봐도 이 마을의 세도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실제 이곳은 고려 말 문신인 이색 선생이 태어났던 곳. 마을 이름 역시 이색 선생이 지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원나라에서 돌아온 이색 선생은 원나라 학자 구양박사의 괴시마을과 자신이 태어난 마을의 경치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괴시라고 고쳤다고 한다.

1630년 영양 남씨가 이 마을에 정착했다. 영양 남씨의 괴시파 종택이 지금도 남아있다. 괴시파 종택은 조선 후기 주택 구조가 잘 남아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외에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단정한 한옥들도 적지 않다. 원래는 고택 숙박으로도 열려 있는 곳들이 있지만, 지금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문을 닫은 곳이 대부분. 그중 ‘ㅁ’자 형의 영감댁은 안채 우측 상방 외부에 툇마루를 설치해 경북의 한옥 중에서도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마을 뒷산에는 목은 이색 생가지와 기념관도 있다. 목은 이색은 포은 정몽주와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 삼은(三隱)으로 잘 알려진 분. 일찍 고향을 떠났으나 평생 이곳을 잊지 못하고 ‘관어대소부’, ‘유사정기’ 등 20여 수의 시를 지었다고 한다.

괴시리마을 뒷산에 자리한 목은이색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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