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명분만 앞세웠던 금감원의 '키코' 패착

  • 등록 2020-06-09 오전 6:34:00

    수정 2020-06-09 오전 6:34:00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산업·씨티은행에 이어 지난 5일 신한·하나·대구은행이 외환 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 배상권고를 불수용키로 했다. 금융감독원 분위기는 침울함 그 자체였다.

금감원은 윤석헌 원장 취임 2개월 만인 2018년 7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키코 사태 재조사에 착수했다. 1년 5개월간의 조사 끝에 은행 6곳에 키코 불완전판매 책임을 물어 일부배상 권고를 했지만 우리은행을 제외한 5곳이 거부했다. 금감원의 사실상 패배로 볼 수밖에 없다.

윤석헌 원장은 키코 배상과 관련해 은행들에 금융회복 신뢰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나서달라고 했다. 감독 당국 수장이 권위를 바탕으로 호소 또는 압박을 했다. 그러나 피해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소멸시효(10년)가 지나버린 시점에서 금감원이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법적으론 전혀 문제가 없는 사안에 대해 감독 당국이 칼을 휘두를 여지는 없다.

‘피해자를 돕는다’는 좋은 명분의 한계도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 금감원 한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법적)근거가 없으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대한 금감원의 중징계를 맞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임원이 일제히 법원에 불복소송(징계취소소송)을 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 등을 제재근거로 들었는데, 정작 이 법에 금융사고에 대한 경영진 책임과 제재를 규정한 명문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018년 금융사 최고경영자 제재내용을 담은 이 법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 문턱은 못 넘었다. 법적근거가 미흡한 제재에 대해선 금융회사가 법적으로 적극적으로 다투는 게 새로운 표준이 됐다.

감독 당국은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권위라는 무기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서민과 영세 소공상인, 중소기업 등을 돕겠다는 선의가 있어도 근거가 없다면 할 수 없다

금융당국이 감독과 제재, 지도를 위해선 제도개선과 법령정비에 힘쓰는 게 정도(正道)다. 21대 국회에서 금융당국의 분발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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