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故김우중 회장의 파란만장한 삶

31세에 대우실업 창업해 30년만에 재계 2위로 키워
세계경영 신화에서 역대 최대 부도 내며 파란만장한 삶
  • 등록 2019-12-10 오전 7:17:58

    수정 2019-12-10 오전 7:17:58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지난 9일 향년 83세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함께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주도한 1세대 기업인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재계 2위 그룹의 총수였으나, 외환위기 때 부도를 내고 해외도피 생활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김우중 전 회장은 ‘세계경영’으로 유명하다. 대우그룹 전성기 때는 1년 중 280일 이상 해외에 체류하며 수백여 곳의 현지법인과 해외 네트워크를 직접 챙겼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 전 회장은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던 중 트리코트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씨와 손잡고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大宇)는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든 것이다.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출범한 대우실업은 첫해부터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58만 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린 데 이어 인도네시아, 미국 등지로 시장을 넓히며 성장했다. 대우실업은 1968년 수출 성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웠다.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이었다. 1973년에는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개발로 간판을 바꿔 달고 무역부문인 대우실업과 합쳐 그룹의 모기업격인 ㈜대우를 출범시켰다. 이어 1976년에는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고, 1974년 인수한 대우전자와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그룹의 주력으로 성장시켰다.

대우그룹은 그룹의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은 1989년 출간한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로 유명해졌다. 이 책은 출간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1990년대 들어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경영을 본격화했다.

대우그룹은 1998년말 396개 현지법인을 포함해 해외 네트워크가 모두 589곳에 달했고, 해외고용 인력은 15만2000명을 기록했다. 당시 한국의 총 수출액 1323억달러 중 대우그룹의 수출액은 186억달러로 약 14%를 차지했다.

그러나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는 세계경영 신화를 무너뜨렸다. 김대중 정부 경제관료들과의 갈등과 마찰을 빚으면서 붕괴가 빨라졌다는 게 재계의 정설이다. 1998년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은 김 전 회장은 ‘수출론’을 집중 부각했지만, 오히려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맞았다.

1998년에는 대우그룹 구조조정의 최우선 핵심사안으로 꼽혔던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금융당국의 기업어음 발행한도 제한 조치에 이어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그 즈음 일본계 증권사에서 ‘대우그룹의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 것을 계기로 상황은 더 나빠졌다.

대우그룹은 1999년 말까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대우그룹은 끝내 해체됐다.

불행은 대우그룹 해체에서 끝나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이후 그는 ‘제2의 고향’ 베트남 등을 오가며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에 주력하며 명예회복에 나섰다.

김 전 회장은 2014년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집필한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통해 “대우그룹의 해체는 경제관료들의 정치적 판단 오류 때문”이라는 ‘기획 해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인은 17조원에 이르는 미납 추징금과 세금을 내지 못하고 1년여 투병 생활을 하다 9일 오후 11시50분 수원 아주대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3월 22일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업 50주년 기념식 행사에 참석한 김 전 회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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