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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가치는 크게 금리와 인플레이션에 의해 결정된다. 금리의 경우 1980년대 이래로 구조적 하락세를 겪고 있다. 이러한 환경이 지속 가능했던 이유는 인플레이션도 함께 하락하는 추세였기에 잠재적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래 전례 없는 통화 및 재정 부양책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의 구조적인 하락세가 지속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만일 인플레이션이 상승 반전한다면, 이 과정에서 어떤 통화의 가치가 상승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중앙은행들의 정책 대응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유럽의 과거 사례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99년 유로화가 도입되기 전에 투자자들은 독일 중앙은행을 굉장히 매파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자 경제가 단기적 타격을 받을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긴축 정책을 단행해서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말 독일의 마르크/리라 환율이 456으로 오르며 마르크 강세를 나타냈고, 1990년대 중반에는 1200까지 상승했다. 이후 유로화가 탄생하며 두 통화가 통합됐다.
오늘날에도 중앙은행들은 경제성장 지원과 인플레이션 통제를 앞에 두고 과거와 똑같은 딜레마를 겪고 있다. 1년 전 코로나19가 확산될 당시만 하더라도 이 같은 고민에 대한 답은 뻔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신 보급에 따른 경제활동 재개와 대규모 통화 부양책에 힘입어, 글로벌 경기가 지난해의 불황에서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는 구간에서 중앙은행들의 정책 정상화 시점에 관심이 모인 바가 있다.
그러나 부채 증가가 정책 대응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정부는 재정적자를 급격히 확대했고 기업들은 매출 감소로 인한 파산을 막기 위해 부채를 통해 현금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전반의 부채비율이 크게 상승했다. 이처럼 부채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경제가 금리 인상에 더 민감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연준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지속하며 금리 인상을 제한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즉, 달러를 더 발행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상승시켜 부채 수준을 관리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서든 특정 재화(이 경우에는 달러)의 초과 공급은 다른 통화나 상품 대비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다른 주요 중앙은행들도 유사한 정책을 통해 자국 통화 가치를 하락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이나 다양한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대안도 있다. 전세계가 자국 통화 약세 유도를 위해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인민은행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중국도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고 있지만 당국은 이를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과도한 부양책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인민은행은 이미 긴축적인 정책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중국 시장 및 위안화에 대한 리스크 요인이 상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통화가치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라는 특징을 감안하면 중국의 위안화가 가진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