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의 창과 방패] 이제는 부끄러움을 멈춰야할 때

  • 등록 2020-11-19 오전 7:28:17

    수정 2020-11-19 오전 7:28:17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이 시간 현재 국내 코로나19 사망자는 496명(세계 133만1,751명)입니다. 지난 1월 14일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지 꼬박 10개월만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망자보다 많은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산재 사망자입니다. 매년 2,100~2,200여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일터에서 숨집니다. 올해도 1~6월까지 1,10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달에도 71명이 사망했습니다. 전쟁도 아닌 평시에 많은 이들이 일하다 생명을 잃고 있다면, 비정상입니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에 감염될까 극도로 예민합니다. 그런데 근로자 사망에는 둔감합니다. 왜 그럴까요. 코로나는 직접적인 반면 산업재해는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헌데 산재 사망이 남의 일일까요. 그들은 바로 내 가족이자 친구입니다. “잘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 아버지, 남편, 친구입니다. 멀쩡하게 집을 나섰던 내 가족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다면, 그래도 이게 남의 일인가요.

우리나라 산재 사망사고는 심각합니다. 1996년 이후 24년째 OECD국가 1위입니다. 자랑할 일이 따로 있지 산재 사망률 1위라뇨. 최근 10년 동안(2009~2019년) 무려 2만2,000여명이 일터에서 숨졌습니다. 매년 2,200명꼴입니다. 칼럼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매일 6~7명씩 숨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합니다.

산재 사망사고가 좀처럼 줄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솜방망이 처벌 때문입니다. 지난 5년 동안 (2013~2017)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 구속된 사업주는 단 한 명입니다. 대신 80% 이상이 평균 432만원 벌금으로 때웠습니다. 이러니 사업주 입장에선 안전에 투자하는 건 불필요한 비용일겁니다. 차라리 벌금을 무는 게 이득인 셈이죠. 생명보다 이윤을 앞에 놓는 천박한 자본주의 속성인데, 이 정도면 끔찍하죠.

대법원 자료를 볼까요. 최근 10년 동안 재판에 회부된 산재 사건은 6,144건입니다. 이 가운데 징역·금고형은 0.57%, 35건에 그쳤습니다. 산재가 반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용균씨가 숨졌던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기억하시죠. 올해 9월 이곳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비슷한 사고로 또 숨졌습니다. 불과 2년만입니다. 38명이 숨진 이천 물류창고 화재도 마찬가지입니다. 11년 전에도 이천 냉동창고에서 불이나 40명이 숨졌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 재범률은 97%(2013~2017)에 달합니다. 일반 범죄 재범률과 비교하면 무려 2배나 높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처벌 기준이 헐렁하니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강력하게 처벌했다면 올해 38명이 또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하청업체에게 집중된다는 것이죠. 흔히 말하는 ‘위험의 외주화’입니다.

구이 전철역 스크린도어에 끼어 숨진 김모씨,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망자 모두 하청업체 직원들입니다. 2011년부터 5년 동안 50대 기업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는 245명입니다. 이 가운데 하청업체 소속은 212명, 원청업체 33명에 비하면 6배 넘게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원청 관리자가 실형을 받은 경우 1건에 불과합니다. 절반 이상인 110건은 벌금형, 나머지 67건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거나 기소 유예됐습니다.

믿기시나요. 위험도 하청으로 넘기고, 책임도 하청이 떠안는 부조리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나온 게 ‘중대재해처벌법’입니다. 안전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사업주를 강하게 처벌하자는 것입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먼저 따지는 부끄러움을 이제는 멈추자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정의당이 발의했지만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힘을 보태는 분위기입니다.

재계는 과잉 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벌이 능사는 아니며 사업주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법이 있는데도 산업재해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또 24년째 OECD국가 1위라면 함께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국은 2007년 ‘기업살인법’으로 이름을 바꾸고 처벌 기준을 강화했습니다. 산재사망률은 EU국가 최고에서 지금은 최저로 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외면할 일만은 아닙니다.

참고로 인구 10만 명 당 산재 사망자는 우리나라가 영국보다 무려 25배나 높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 어떤 가치도 생명보다 우선하지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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