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한미훈련 논란, 정책적 판단도 중요하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 등록 2021-02-17 오전 6:00:00

    수정 2021-02-17 오전 6:00:00

3월에 열리기로 되어 있는 한미연합훈련의 재개 여부가 논란이다. 북한의 강력한 중지 요구에 문재인 대통령이 “협의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증폭되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훈련을 실시한다는 생각으로 한미연합사령부와 시행 방법을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북한의 요구에 밀려 훈련이 연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가라앉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이 문제는 한미연합훈련의 재개 여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정치적 판단’과 ‘군사적 필요’ 사이의 충돌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 입장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는 대북 억제력의 핵심인 한미 연합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인 연합훈련이 필요하다. 북한과의 대화라는 정치적 판단과 군사적 훈련의 필요성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민군관계’이다. 정치적 판단이 문민정부의 몫이라면 군사적 필요는 군이 담당하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문민통제’이다. 즉 정부의 결정에 군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민통제의 원칙이 중요한 것은 단순히 군 통수권자가 정부수반(대통령)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쟁의 본질이 정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본질을 가장 잘 규명한 이가 프러시아 군사이론가 클라우제비츠(C. Clausewitz)다. 그는 전쟁을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정책)의 연속”으로 정의했다. 대부분의 군사학 교과서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만큼 권위 있는 설명이다. 이 정의의 핵심은 군사적 행위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정치적 판단이 우선한다는 얘기다.

군인에게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군인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든 통수권자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역 군인들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19세기 미국 장교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을 정도로 정치적 중립에 민감했다.

그렇다고 군인이 정부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군인은 국방전문가로서 자신들의 의견을 소신껏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정부는 군의 의견을 경청할 ‘의무’가 있다. 물론 경청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군의 주장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엘리엇 코헨 교수는 이를 ‘불평등 대화’라고 불렀다.

군사에 대해 정치가 우위에 있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군사적 행위가 정치적 의미를 통해 해석되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의 열병식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열병식을 통해 북한은 자신의 군사력을 과장하기도 하고, 첨단 무기를 선보이면서 공포심을 조장하기도 한다. 각종 핵실험이나 방공포 화력시험도 마찬가지다.

한미연합훈련도 정치적 행위로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 강력한 한미연합군과 싸워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미연합훈련은 한미동맹을 과시하는 정치적 상징이다. 양국의 해병대가 상륙정에 함께 뛰어내리는 장면만큼 한미동맹을 더 잘 드러내는 모습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 한미연합훈련의 성격과 규모도 조정되어 왔다.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로 기존 훈련이 대폭 취소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남북관계 역시 우리의 군사적 행위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우리 군이 ‘정권 눈치보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정도의 문제는 있겠지만, 민군관계의 본질과 군사 행위의 정치적 의미를 고려할 때, 적절한 수준의 ‘고려’는 필요하다. ‘원점 타격’ 발언이 필요할 때가 있고 ‘훈련 연기’가 고려될 때도 있다. 우리 군이 실질적인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면 문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정치적 조율을 ‘눈치보기’로 매도하면서 군 지휘부를 깎아내리는 것은 좀 과한 비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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