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올해로 7번째를 맞이한 2019 홍콩 아트바젤(Art Basel HK)은 미술애호가들과 외신 매체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다. 35개국에서 242개의 정상급 갤러리가 참여하여 1만 점의 작품을 판매했을 뿐 아니라, 5일간 열린 전시회 기간 동안 무려 8만 8000명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으니 명실상부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번 2019 홍콩 아트바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에 본고를 시작으로 3회에 걸쳐 2019 홍콩 아트바젤을 통해 다시 한번 미술사적 위상을 빛낸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 이건용
이건용(李建龍, 1942~ )은 1970년대 회화, 설치, 퍼포먼스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하며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도하였고, 현재에도 전시 공간에서 예술적 생명력을 발휘하며 심혼을 담은 작품들로 관객과 소통하는 작가이다.
-1970년대 한국 미술계의 상황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에 이르는 약 10년간은 그 이전인 1950년대 후반부터 성행한 ‘앵포르멜(Informel)’ 미술과, 1970년대 중반 이후 화단의 주류를 형성한 단색조 회화로 전이되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미술 양식의 측면에서 보면 일관된 경향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실험적인 경향이 대두된 시기이다. 특히 미술가들의 국제전 참가가 확대되고, 서양의 전위적 미술운동이 유입되면서 국내에서도 전위미술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당시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는 서양의 팝아트(Pop Art), 옵아트(Op Art), 행위예술( performance), 해프닝(Happening) 등 다양한 방법을 수용한 예술 활동이 소그룹이나 개인 단위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1970년 중반에 등장한 이벤트(event)가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일면을 보여준다. 대규모의 전위적 집단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탄생은 1960년대의 새로운 미술 경향을 결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건용은 ‘객관적 현실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실천적 모토로 삼은 AG(한국 아방가르드 협회, 1969- 1975-곽훈, 김구림, 김차섭, 박석원, 김종배, 서승원, 이승조, 최명영, 하종현의 작가군과 김인환, 오광수, 이일의 평론가들)의 구성원이자, 또 다른 그룹인 S.T (Space & Time협회, 1970- 1981-이건용, 김복영, 김문자, 여운, 박원준, 한정문, 신성희)의 수장으로서 구성원들과 함께 예술세계를 확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이건용 예술세계의 핵심: ‘이벤트-로지컬’
이건용의 ‘이벤트-로지컬’은 행위 자체에 목적을 둠으로써, 중성화의 논리를 지향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상반되는 개념어의 결합이기에 문법상으로는 ‘로지컬-이벤트’라고 표기해야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벤트가 ‘반성(reflection)’적 의미를 함의하기에 ‘이벤트-로지컬’로 정의하였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1970년대에 이건용과 그의 동료들이 행한 이벤트는 ‘이벤트-로지컬(event-logical)’에 속한다.
“‘이벤트-로지컬’은 어떠한 전제나 목적을 위하여 합목적적으로 전개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일어난 사건은 사건 자체로서 반복적인 tautology(동어반복)의 논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다시 말하거니와 한 장(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논리로 되묻는 것이고, 연출되고 있는 논리를 사건으로 되묻는 일일 것이다.”
-<4人의 EVENT> 포스터 및 초대장에 실린 글, 오상길ㆍ김미경, 『한국현대미술 다시읽기 II Vol.1』, 이건용
이처럼 작가는 이벤트의 논리성에 대한 성격을 규정짓고 ‘이벤트’와 ‘해프닝’을 구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해프닝은 행위의 우연성을 통하여 저질러지는 어떤 사태의 표출과 그에 대한 물음으로 특징되는데 반해, 이벤트는 처음부터 행위의 우연성을 거부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연성이 궁극적인 행위에서 드러나야 할 효과라고 생각되지만, 행위 자체가 벌써 어떤 규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룹 토론 中, 이건용
1975년 4월 19일 백록화랑의 개관전이었던 <’75 오늘의 방법전> 오프닝에서 이건용은 자신의 이벤트를 ‘이벤트-로지컬(event-logical)’이라 명명하고 최초의 퍼포먼스인 ‘동일면적’과 ‘실내측정’을 공개하였다. 두 작품 모두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방식으로 공간의 길이와 면적을 측정하는 행위예술이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약 5년여에 걸쳐 40개가 넘는 행위미술을 발표한 그는 예술을 통한 소통에 있어 작가의 신체가 가장 탁월하고 직접적인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예술적 신념을 명징하게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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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사에서 캔버스를 등지고 신체를 움직여 회화를 그리는 시도는 제가 최초로 했어요. 전통 회화의 상식에 의문을 던지는 퍼포먼스였어요.”-이건용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힘들다”라고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관객들을 향해 “왜 말리지 않는가”라고 불평을 하는 작가의 언어 역시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 모든 행위의 과정들은 창작의 여정을 의미화한 것이자 예술적 신체 행위와 일상의 풍경 속 행위의 미묘한 차이를 작가의 감성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과거 1970년대에는 ‘논리’라는 자신만의 방법론을 명료히 하는 방식으로 행위를 하였다면, 현재에 가까울수록 논리적인 부분보다는 일상의 행위들을 적극 수용하여 공존을 이루는 데 비중을 둔다.
행위미술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전위미술가의 반열에 오른 이건용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기본이념에는 고등학생 시절 영향을 받은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의 현상학과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의 언어철학이 내재해있다.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에서 ‘의식’을 신체와 깊이 결부된 것으로 사유하듯이 이건용은 미술의 본질과 현실 속 미술품의 존재 위치에 대한 물음을 ‘신체’를 주축으로 구성되는 시·공간 안에서 관객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는 방식으로 답한다.
결국 그가 오랜 세월 천착하고 있는 행위미술의 핵심은 ‘신체’, ‘장소’, ‘관계’의 유기성에 있으며, 이들이 서로 공존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흔적을 중요한 의미체로 삼은 것이 그가 만든 퍼포먼스 작품들로 귀결된다. 이에 때로는 전혀 미술품같이 보이지 않는 의외의 사물들이 전시 공간 속 이건용과 관객의 관계 맺기를 통해 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1973년 파리비엔날레와 1979년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차례로 참가하면서 19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작가 중 한 명이 된 이건용은 2010년 중반부터 국내 미술계의 블루칩으로 부상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로 기획된 개인전 ‘달팽이 걸음’전을 기점으로 2018년 1월 호주 시드니에서 진행된 호주 작가 4명과 함께 진행한 ‘A4 아시아현대미술센터 그룹전’과 지난해 8월 세계 3대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에 있는 페이스갤러리의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 특히 페이스 갤러리 전시 이후 작품 가격이 대폭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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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건용의 작품세계에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작가는 ‘선명성’을 언급한다. 전달하려는 개념을 이질적인 것들과 섞지 않고 지엽적으로 접근해 선명한 이야기 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시점과 공간을 초월한 폭넓은 소통을 견인한다는 것이다.
“내 그림은 회화가 가진 작가의 고도의 성과와 더불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해야만 회화의 전문적인 지평을 넓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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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로서 한국 전위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그가 현재에도 왕성하게 예술 활동을 이어가며 정상의 위치에 서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실천적 교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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