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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의 창과 방패] 긴 침묵은 깊게 침몰할 뿐

  • 등록 2020-11-26 오전 7:45:38

    수정 2020-11-26 오전 11:18:46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연방총무청(GSA)이 어제서야(23일) 조 바이든 승리를 공식 인정했다. 에밀리 머피 GSA청장은 곧바로 대통령직 인수인계에 필요한 업무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수위원회는 630만 달러(70억원) 예산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또 바이든은 당선인 자격으로 국가안보 및 외교 관련 정보를 공식 브리핑을 받는다. 자연스러운 정권 이양이 시작된 것이다.

GSA 결정이 갖는 함의는 간단치 않다. 트럼프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판단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다. 또 자신에게 반기를 든 관료들을 줄줄이 자르고 있다. 하지만 머피 청장은 자리대신 진실과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미국 민주주의는 이처럼 소신 있는 관료와 언론, 국민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미국 국민은 지난 4년 동안 트럼피즘에 지쳤다. 반 이민, 반세계화, 반 워싱턴 정치에 신물이 났다. 그리고 트럼프를 버렸다. 또 소신 있는 관료들은 위기 때마다 브레이크를 걸었다. 지난 10일 해임된 에스퍼 국방장관도 그중 하나다. 지난 6월 트럼프는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되자 군 투입을 명령했다. 하지만 에스퍼는 과감하게 ‘아니오’를 외쳤다. 덕분에 큰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예스맨’을 자처하고 군을 투입했다면 대량 유혈사태로 번질 수 있었다. 또 남부연합 깃발을 군부대에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도 트럼프와 맞섰다. 에스퍼는 남부연합은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를 지지했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최근 트럼프가 해임한 관료 중에 크리스토퍼 크렙스란 인물도 있다. 그는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인프라보안국(CISA) 국장이다. 트럼프는 대선 직후 “자고 일어나니 표를 도둑맞았다”며 해킹을 통한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사이버업무를 책임진 크렙스는 “이번 대선은 미국 역사상 가장 안전했다. 한 표도 틀린 게 없다”며 정면 반박했다. 다음날 트럼프는 그를 잘랐다.

에밀리 머피 GSA청장, 크리스토퍼 크렙스 CISA국장, 에퍼스 국방장관. 이들은 하나같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소신을 밝혔다. 뒷담화가 아니라 자리를 걸고 분명한 소신을 밝힌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가 부러운 이유는 이런 관료들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는 살아 있는 언론이 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주류 언론은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다. 오로지 진실로 승부한다.

미국 언론은 지지 정당은 공개적으로 밝힌다. 대신 사실보도에는 충실하다. 겉으로는 불편부당을 앞세우지만, 뒤로는 온갖 기교를 부리는 한국 언론과 비교된다. 이번 대선 기간 중에도 미국 방송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인터뷰를 중단했다. 심지어 트럼프 방송을 자처한 폭스 뉴스조차 트럼프 인터뷰를 끊었다.

미국이라고 갈등이 없는 건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으로 갈려 극단적인 갈등을 빚었다. 언론 또한 CNN과 폭스 뉴스로 나뉘어 서로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래도 많은 국민들은 균형 잡힌 시각에서 뉴스를 소비하고 판단한다. 영혼 있는 관료, 살아 있는 언론은 앞으로도 흔들릴 때마다 미국 호를 바로 잡아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가덕도 신공항으로 급선회하고, 월성 원전을 중단해도 ‘아니오’라고 외치는 관료를 찾아보기 어렵다.

동남권 신공항은 이미 6년 전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난 사안이다. 프랑스 공항 전문 업체에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가덕도는 최하위를 기록한 곳이다. 그런데도 예비타당성조사 생략, 특별법 제정 등 밀어붙이고 있다. 월성 원전 또한 감사원 감사 결과 수치를 조작해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관은 자료를 폐기한 공무원을 감싸고, 민주당은 적극적 행정이라며 두둔했다.

정부 정책이 180도 바뀌었다면 ‘아니오’라고 외치는 관료가 한 명쯤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침묵하고 있다. 이정옥 여가부 장관은 내년 보궐선거를 성인지 학습기회라고 했다. 공직자가 영혼을 잃어버릴 때 어떤지 보여준 좋은 본보기다. 소신 있는 관료를 찾기도 힘들지만, 소신을 겁박하는 정치가 더 큰 문제다. 예스맨으로 가득 찬 정부, 건전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 이익에 급급한 언론은 해악이다. 긴 침묵은 깊게 침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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