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돈 되는 미술 이야기]2019 홍콩 아트바젤의 중심에 선 한국 작가들, 그 첫 번째 이야기

  • 등록 2019-04-20 오전 9:28:00

    수정 2019-05-03 오전 9:09:32

미술품에 투자하는 미술시장은 흔히 일부 선진국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계층과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시장 양상도 변화하는 모양새다. 국내에서는 최근 미술품에 대한 소액 부분 투자를 제공하는 ‘아트투게더’라는 서비스가 최근 문을 열고,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서비스 운영사인 투게더아트의 주송현 아트디렉터가 근래의 시장동향과 전망을 다룬 내용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편집자 주> [아트투게더 주송현 아트디렉터] 아트 바젤(Art Basel)은 해마다 개최되는 국제 아트 페어이며, 스위스 바젤(1970)을 시작으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Art Basel in Miami Beach, 2002)와 홍콩(Art Basel in Hong Kong, 2013)에서 개최되고 있다. 전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아트바젤은 ‘예술계의 올림픽’ 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임시 박물관’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점차 그 규모를 확장해가고 있다.

지난 3월 올해로 7번째를 맞이한 2019 홍콩 아트바젤(Art Basel HK)은 미술애호가들과 외신 매체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다. 35개국에서 242개의 정상급 갤러리가 참여하여 1만 점의 작품을 판매했을 뿐 아니라, 5일간 열린 전시회 기간 동안 무려 8만 8천 명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으니 명실상부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번 2019 홍콩 아트바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에 본고를 시작으로 3회에 걸쳐 2019 홍콩 아트바젤을 통해 다시 한번 미술사적 위상을 빛낸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추상에 기초를 둔 구상으로서의 ‘꽃’을 그리는 화가, 김종학(1937~)

김종학은 자연의 화려함을 화폭에 담아내는 화가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후 추상 작업에 몰두하던 중 1962년 새롭게 결성된 앵포르멜 운동 그룹인 ‘악뛰엘(Actuel)’에 참여하게 된다. ‘악뛰엘’은 ‘60년미술가협회’와 ‘현대미술가협회’ 회원 일부가 연합하여 결성한 단체이며, 정상화, 하인두, 김대우, 손찬성, 전상수, 김종학, 박서보, 김봉태, 김창열, 장성순, 조용익, 윤명로, 이양로 총 13명의 화가들로 구성되었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앵포르멜과 구상 판화,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 사조의 실험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친 그는 서서히 동어반복적인 서구 모더니즘 미술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구상회화의 가능성을 주목하였고, 과감한 화풍의 변화를 시도한다. 즉, 모노크롬 추상과 개념미술에 거리를 두며 돌파구를 모색하던 1970년대 말 설악산의 풍경과 자연의 소재들을 관조하면서 새로운 작품 형식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설악산에서 색과 형태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 김종학

설악산에 정착한 이후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연의 풍경과 화려한 꽃 도상을 그리며 ‘설악산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김종학의 회화는 단순히 설악산의 자연을 재현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예술적 뿌리를 추적하면 추상에서 시작하여 구상으로 전개됐지만, 추상에 기초를 둔 새로운 구상회화 작업을 위해 자연을 탐구하며 심안으로 포착한 이미지들을 재조합하여 캔버스 위에 표면화한다.

이처럼 추상에서 역설적으로 구상을 추구하는 김종학의 예술적 태도는 추상과 구상을 근원적으로 하나로 보는 시각에 기인한다. 작가 스스로도 화풍의 주요 개념을 ‘추상적으로 구성한 구상회화’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추상이 없으면 좋은 구상이 없고, 좋은 추상 역시 구상 속에서 나오는 법이다. 구상에 오른 발을 담그면 추상에 왼발을 담고 그래야 좋은 작품이 된다. 나는 자연의 꽃을 그리지만 형태와 색상에서 추상이 뒷받침을 하고 있다. 화면의 구성에 따라 마음 속에서 취사선택하고 재구성한 꽃을 그린다. 작가의 안목이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을 다르게 보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기본을 말하는 것이다.” - 김종학

김종학은 자연의 모습이 재현적인 풍경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고자 평소 고미술품을 수집하며 체득한 미감을 가미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이뤄나갔다. 더불어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성격이 표현법에 더해지면서 파격과 정제를 오가는 자연의 모습이 제작되었다. 이에 관해 미술평론가들 역시 “김종학의 그림은 설악산의 재현이 아니라 설악산을 향한 환희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Flowers in Bloom’, 2019. acrylic on canvas
‘Flowers in Bloom’은 이번 2019 홍콩 아트바젤에 출품된 작품이다. 당시 무라카미 다카시의 ‘카이카이 키키 황금조각상’의 우측 벽면에 전시되어 꽃에 대한 한국과 일본 작가 특유의 예술적 시선이 대비를 이루며 화사한 에너지가 강화되는 미적 효과가 창출되었다.

‘Pandemonium’, 2018. acrylic on canvas
‘Pandemonium’ 작품도 이번 2019 홍콩 아트바젤에서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가로 8 미터, 세로 2.8 미터 길이의 대형 캔버스에 형형색색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지닌 꽃들이 기운생동의 향연을 펼친다. 이 작품은 마치 홍콩에 파견된 한국문화 전도사처럼 전 세계에서 모인 관람객들에게 한국의 봄과 미감을 전해주었으며, 부스에 전시하자마자 바로 팔렸다는 후문이다.

위의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성은 원근법을 파괴하고 캔버스 전체를 꽃의 도상들로 가득 채워 전면화의 구도를 취한 점과 검정색 바탕 위에 격정적이고 속도감있는 붓터치로 원색의 꽃을 그려낸 것이다. 특히 붉은색으로 그려진 꽃들이 검정색의 배경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전통적인 보색 대비 효과를 극대화한다.

작가는 대체로 실제 꽃의 색상을 최대한 유지한 채 화면 안에서 색의 조화를 추구하지만 일부는 색채의 균형을 위해 의도적으로 진하게 채색하거나 실제 대상과 관련 없는 색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작가가 언급한 ‘추상에 기초를 둔 구상’이라는 개념에 상응하는 화법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인 꽃을 선택했음에도 김종학만의 독특한 미감이 살아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구상회화로 전환한 이후 ‘색채의 조화’와 ‘기운생동’을 작품의 최우선 요소로 고려한 그에게 자연과 사물, 구상과 추상이 만나는 정체성의 기호로 포착된 것이 꽃이었다. 또한 꽃의 화려한 외형을 여성으로 상징하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거칠고 투박하며 부분적인 미를 파괴하여 큰 하모니에 충실한, 힘 자체가 아름다운 꽃의 풍경화를 제작하였다. 따라서 김종학의 꽃은 ‘한국의, ‘남성적’ 자연임을 드러내는 형상인 동시에 작가 자신의 심상을 넘나드는 작업의 결정체인 것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시간을 거쳐 작업의 개념적 층위와 시간적 층위가 비로소 기운생동의 조화를 이룬 김종학은 현재 국내외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영향력있는 작가이다. 지난해 프랑스 기메 국립 동양박물관(Muse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Guimet)에서 열린 회고전 이후 올해 3월에는 세계적 화랑인 프랑스 파리 페로탕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설악산풍경(Landscape of Mt.Seorak)’, 2003, 캔버스에 유채
그뿐만이 아니다. 국내외 미술경매시장에서도 애호가들의 관심이 점차 증가하면서 높은 가격대에 작품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설악산풍경’은 꽃과 식물, 새 등을 화폭에 가득 채워 생명의 기운이 샘솟는 설악산의 풍경을 표현한 작품이며, 2007년 한 미술품 경매에 출품되어 5억 7천만 원에 낙찰되어 자체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외에도 화려한 색채와 대범한 표현력으로 한국의 자연을 그려낸 그의 작품들이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매화’, ‘꽃잔치’, ‘숲’, ‘백화만발’, ‘가을’, ‘호박꽃’, ‘잡초’. ‘설악산’, ‘복사꽃과 새’. ‘겨울바람’ 등이 있다.

김종학 화백. 사진=조현갤러리 제공/뉴시스
1979년 어느 봄날, 김종학은 인생의 풍파와 고초를 겪으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심정으로 무작정 설악산으로 떠났다. 다 잃었다고 생각하고 주저앉았을 때 그의 눈에 보인 건 지천으로 핀 야생화였다. 설악산의 풍경과 자연의 세계를 주목하면서 마음에 위로를 얻었다는 그에게 꽃은 재현의 대상이 아닌 내용의 발현이다. 칠순의 나이가 되어서야 전통과 자연, 구상과 추상을 하나의 의미로 아우르면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그가 말한다.

“20, 30대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렸고, 40이 넘어가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고, 50대가 돼서야 내 작업이 보였다. 60이 되어야 화가가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다 맞다”

김종학의 강한 필력으로 표현된 형형색색의 꽃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희망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인생 전체가 한 폭의 캔버스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전히 매일 5시간씩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는 노장의 그가 보여줄 2019년 설악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어떤 풍경일지 궁금하다.

주송현 아트투게더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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