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영화 '싱글라이더'와 동양그룹 사태

  • 등록 2020-08-01 오전 11:00:00

    수정 2020-08-01 오전 11:00:00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2017년 나온 영화 ‘싱글라이더’는 톱스타인 이병헌과 공효진이 나와 주목 받았던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스타성과 비교해 그해 흥행에 있어서는 크게 돋보이진 않았지만 ‘잘 만든 영화’로 지금까지 꼽힙니다.

이 영화를 절절하게 본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해외에 가족을 보낸 기러기 아빠들입니다. 혹은 사업이 실패를 하는 등의 깊은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아빠들입니다.

이 영화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해 기러기 아빠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우리 주변 기러기 아빠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던 것이죠.

영화 속 기러기아빠로 나왔던 주인공(이병헌)은 잘 나가는 금융 엘리트였습니다. 증권사 지점장으로 영업실적 1위를 기록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 번 돈을 호주에 있는 아내와 아들에게 보냈죠. 덕분에 이들은 호주에서 넉넉한 생활을 합니다. 아내는 자신만의 꿈을 이룰 기회를 얻게 됐고요.

이런 호주의 상황과 달리 한국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고객들에게 추천했던 회사채가 부도 결정이 됐기 때문입니다. 법정관리로 들어가게 되면서 투자자들은 원금을 날리게 생겼습니다.

자신들을 믿고 투자하라고 권했던 주인공과 그의 부하 직원들은 몹시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회사 사장을 믿고 판매를 독려했던 상품이 사실은 부실 상품이었던 것이었죠.

주인공과 그의 직원들은 사무실 안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까지 빕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분노는 진정되지 않습니다. 투자자 중에는 평생에 걸쳐 모은 돈을 맡겼던 우리네 보통 사람도 있었고요.

영화 속에서는 이게 무슨 일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잘나가던 금융엘리트였던 주인공이 내쫓기듯 호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영화 속 장치’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짐작을 합니다. 모티브가 된 사건은 무엇일까.

이 영화의 시작점이자 배경이되는 사건은 2013년 있었던 동양그룹 사태, 멀리로는 1990년대 종금사 사태와 맞닿아 있어요.

최근의 사건으로 치면 해외금리연계파생상품(DLF) 사태나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와 관련이 있죠. DLF나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는 판매사인 은행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커버(손해배상)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영화속 시점과도 무관하고요. 그래서 많은 이들은 2013년 동양그룹 사태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동양그룹사태는 2013년 촉발된 고의적인 계열사 부실채권 판매 사건과 관련 있습니다. 재벌 회사 오너가 유동성 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증권사 등의 금융회사를 동원했던 것이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소유주가 구분돼야한다는 ‘은산분리’의 존재 이유를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예시가 됩니다.

이 그룹의 모태는 제과그룹이고 또다른 성장 축은 시멘트 회사였습니다. 시멘트 산업은 2000년대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고요.

그래도 이 그룹의 오너는 한국 경제 성장의 단계에 맞춰 나름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잘 짭니다. 1984년 증권사를 인수해 금융업에 손을 댔고 1989년 생명보험사, 1995년 카드사를 설립합니다. 토목 위주의 한국 경제가 금융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되어가는 것을 대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은 ‘어느정도’ 맞아떨어졌고 2000년대 들어 시멘트 등 핵심 사업이 주춤할 때 증권과 보험 등 금융 계열사 매출이 크게 늘어납니다. 그룹 이익의 절반을 넘는 수준까지 갔었고요.

위기의 방아쇠 역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합니다. 증권사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죠. 그룹 차원에서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합니다. CP는 일종의 외상증서 같습니다. ‘지금 당장 돈은 못 드리지만 특정 기간 뒤에 돈을 드릴게요’라고 약속을 하는 것이죠.

이 CP는 1990년대 유동성의 위기(현금부족)에 빠진 대기업들이, 이를 탈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발했던 적이 있습니다. 회사채보다 발행하기 쉽다는 이점 때문입니다. 동양그룹은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죠.

더불어 다량의 회사채도 발행합니다. 아무래도 동양그룹의 신용도가 낮다보니, 이율은 높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전형이었던 것이죠.

이 채권이 투자자한테는 ‘안전하지만 이율이 높은 상품’이 되어 팔립니다. 특히 동양증권이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파는데 1등공신 역할을 해줬고요.

그러다 2013년 금융감독원이 계열사의 부실채권 판매를 금지합니다. 동양시멘트 채권을 동양증권에서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그해 동양그룹에서 발행한 채권이 1조1000억원 규모였고 9월 만기가 돌아오는데 이거 갚을 길이 차단됩니다. 돌려막기가 막히자 유동성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파국을 맞게 되고 동양그룹은 해체됩니다. 증권업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죠. 왜냐하면 계열 증권사가 오너회사의 부실 채권을 알면서도 팔았다는 정황과 의심이 있었거든요.

오너가의 전횡을 막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라는 게 있지만, 제대로 작동을 못했죠. 이후에도 대우조선해양 분식 사건 등도 보면 이런 감시와 견제 구조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해서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도. 우선은 우리나라 사외이사 제도가 여전히 오너가의 거수기 집단처럼 돼 있어 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회계감사 업체들도 있지만, 이들도 자유롭지는 못해요. 회계를 감사하는 기업이 또 고객사이기도 하거든요. 회계업계에서는 그럴 일 없다고 하지만, 과거에 그런 일이 왕왕 있어 왔고요. 여전히 기업들은 분식과 돌려막기에 대한 유혹에 흔들립니다.

결국 동양그룹 오너는 실형을 받았지만, 그 밑의 직원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치욕을 감내해야했죠. 직장인이기 때문에, 회사원이기 때문에, 조직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일했을 뿐인데 말이죠.

이 즈음에서 기업 경영진의 도덕성과 그들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합리성은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수많은 아빠들의 목숨줄을 옥죌 수 있어서입니다. 싱글라이더의 주인공은 한 예가 됩니다. 열심히 일한 대가가 ‘인생의 파국’이라뇨.

영화 속 이야기가 지금의 당신과 무관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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