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 老시인 변신.."속옷에 머리카락 하나가"(인터뷰)

영화 `은교`서 70대 노인 변신
분장에만 600시간.."죽은 생선? 1급수 물고기"
  • 등록 2012-04-27 오후 3:53:24

    수정 2012-04-27 오후 6:05:20

▲ 박해일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 "죽은 생선 같았어요. 8시간을 매달려 분장을 하고도 유통기간이 고작 10시간밖에 안 됐죠."

정지우 감독은 영화 `은교`에서 70대 노시인 이적요로 분한 주연배우 박해일(35)의 도전, 고생을 이같이 말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두 배나 많은 노시인. 게다가 손녀뻘인 소녀 은교를 만나면서 내면이 흔들리는 인물. 노인의 가면을 쓰고, 노인다운 표정과 동작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감정을 연기한다는 건 제아무리 베테랑 배우라도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나이에 노인 연기를 하라고?` 처음에는 그 또한 당황했다. 원작을 읽고는 궁금해졌다. `당신 나이대의 젊은 배우가 이적요를 연기하면 젊음과 늙음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의 설명을 들은 후엔 호기심이 생겼다. 더욱이 4년 전 `모던보이`에서 호흡을 맞춰 감독에 대한 믿음도 있던 터였다. `해보자!` 박해일은 그렇게 이적요가 됐다.

탑골공원 일화는 유명하다. 촬영 전 막걸리를 사 들고 탑골공원을 찾아 그곳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노인의 기운을 몸소 피부로 느끼고 관찰한 것. 이 밖에도 많은 자료를 챙겨 봤다.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의 스틸 사진, 인터뷰 영상, 할리우드에서 특수분장으로 노인이 된 배우들의 모습 등이 이에 해당한다. 나이 든 국내, 외국 배우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 것이냐, 따라 하는 것이냐?`의 문제가 여전히 남았다.

"노시인 이적요에 접근하는 게 가장 큰 숙제였어요. 실리콘 조각을 온몸에 붙인 상태에서 연기하는데 그 이질감을 없애기가 초반에는 정말이지 어렵더군요. 속옷에 머리카락 짧은 게 하나 끼여 거치적거리는 느낌이랄까요? 어떻게든 손을 넣어 뽑아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 답답한 기분 있잖아요. 촬영 전 그토록 의지했던 분장에 의상, 세트 등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됐어요. 결국 주체는 나구나, 나로부터 출발해야 틀리지 않겠다 새롭게 느꼈죠."
▲ 박해일은 영화 `은교`에서 20대부터 50대, 70대를 아우르는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20대 청년이 되어 은교와 싱그러운 청춘을 나누고, 중년의 학자로서 위엄을 발휘하며, 열일곱 소녀 은교로 인해 흔들리는 노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는 평가다.
박해일은 인터뷰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었고 "혼자 고생한 작품이 아니었다"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칭찬 대부분을 스태프에게 돌렸다.

서두에 밝힌 정 감독의 `죽은 생선` 비유에도 "1급수 맑은 물에 사는 물고기는 조금만 물이 탁해져도 못살지만, 미꾸라지는 다르지 않느냐?"라며 "그만큼 분장이 정교했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 일어나 촬영을 못 할 만큼. 8시간 분장하고, 10시간 촬영, 해체하는 데만 2시간. 미꾸라지였으면 관리가 좀 더 쉬웠을 텐데 감독님이 매우 힘들었을 거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더불어 `은교`를 촬영하며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청춘을 갈망하는 노시인을 연기하다 보니 때론 어쩔 수 없이, 분장으로 노인의 몸을 갖고 보니 때론 자연스럽게.

박해일은 "전신 분장을 하며 느낀 건데 촬영 회차가 늘수록 피로감 또한 만성적으로 쌓여가더라"라면서 "관절이 안 좋아지고 결림도 있고, 두통도 생기고.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반면, 생각은 많아지던데···. 정말이지 배우로 귀한 경험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적요 후유증(?)으로는 `생각이 많아진 점`을 들었다.

"나이 든 제 모습도 상상해 봤어요. 그때까지 연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그런데 제가 오늘 말을 좀 정신없게 하고 있진 않나요? 이상하게 정리가 잘 안 되는 느낌인데···. 원체 생각이 많은데 `은교` 찍고 생각이 더 많아졌어요. 말을 하다가도 생각을 하니 어쩌면 좋을까요."

(사진=권욱 기자)
▲ 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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