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비좁은 극장에서 우주를 상상하다

심사위원 리뷰
라스낭독극장 두 번째 연극 '지혜의 방'
'인어공주' 모티프..타임슬립 반전 묘미
  • 등록 2021-01-28 오전 6:30:44

    수정 2021-01-28 오전 6:30:44

(사진=창작집단 LAS)
[이성곤 연극평론가] ‘라스낭독극장’은 창작집단 LAS가 3년째 해오고 있는 작업이다. 입체낭독극을 표방하며 다른 낭독공연들과 차별화를 꾀한다. ‘보이는 라디오’처럼 ‘보는 낭독‘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공연의 현장감과 텍스트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형식이다. 해마다 주제를 달리해 작품을 발표해왔다. 올해의 주제는 ‘고전의 재창작’이다. ‘우투리 설화’와 ‘인어공주’, 그리고 ‘세비야의 이발사’를 모티브로 재창작했다. 과거에도 ‘헤카베’, ‘줄리엣과 줄리엣’ 등 고전을 동시대적 이슈로 재해석해내며 실력을 검증받은 극단이다. 라스낭독극장 두 번째 공연인 ‘지혜의 방’(이주희 작, 이다빈 연출, 혜화동1번지, 2021.1.8.-9)은 2020년 ‘고전 재창작 프로젝트’ 글쓰기 워크숍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쓰고 출연한 이주희는 극단 소속 배우이기도 하다.

‘지혜의 방’은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인어공주 이야기가 중간중간 등장하지만 원작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9살 지혜와 7살 준이가 주인공이다. 엄마 아빠의 잦은 부부싸움과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각자의 아지트에 숨어든 두 아이가 어느 날 교신을 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종이컵과 실로 만든 실전화기를 가지고서다. 교신을 매개로 지혜의 방에 준이가 방문한다. 그리고 두 아이의 상상 속에서 동화 같은 놀이가 전개된다.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 있어도 우주의 왕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햄릿의 대사가 생각난다. 아이들에게 비밀아지트란 햄릿이 생각하는 호두껍데기와도 같은 공간일까? 어른들의 세계에서 점점 말을 잃어가는 아이들. 그 대가로 마법 같은 친구를 만난다는 것 정도가 원작을 환기시켜준다. 순수 창작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품이다.

반전도 있다. ‘타임슬립’이다. 두 아이가 살아가는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설정이다. ‘스포’의 위험을 무릎 쓰고 말하자면 지혜가 바로 준이의 엄마다. 극 초반, 준이 엄마가 왜 할머니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지 그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간결하지만 매우 극적인 방식으로 연출된다. 어린 지혜를 나무라는 ‘졔엄마’를 보자마자 준이가 웅얼거린다. “할머니…?” 결국 어린 시절의 엄마와 내가 만나 친구가 되고, 어린 시절의 엄마는 할머니를 만나 갈등을 해소한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롭고 허를 찌른다.

‘공연’보다는 단출하고 ‘낭독극’보다는 아기자기한 오브제들이 눈에 띈다. 다섯 개의 의자가 객석을 향해 반원형으로 배치돼 있고, 그 앞에 2단으로 된 두 개의 박스가 나란히 놓여있다. 박스는 지혜와 준이의 비밀아지트다. 앞뒤로 보면대도 세워져 있다. 보면대는 이 공연이 낭독공연임을 지시해주는 역할만을 부여받은 듯하다. 이미 대사를 다 외운 배우들의 연기와 제스처는 거칠 것이 없다. 여섯 명의 배우들은 흰색 상의와 청바지로 의상을 통일했다. 캐릭터에 대한 몰입과 텍스트에 대한 집중을 이끌어내기 위해 몰입과 거리두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좁으면서도 마저 채우지 않은 혜화동1번지 극장은 마법과 동화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연극인들에게 혜화동1번지는 어쩌면 비밀아지트와도 같은 공간이다. ‘호두껍데기’처럼 비좁은 극장에서 오랜만에 상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지혜의 방’이 바로 그 통로가 되어주었다.

(사진=창작집단 LAS)
(사진=창작집단 LAS)
(사진=창작집단 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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