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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장군 몰래 찾아온 봄, 숲길에서 만나다

충북 보은 속리산국립공원을 걷다
정이품송공원서 오리숲길
보물사찰로 불리는 '법주사'
법주사~세심정까지 이어진 '세조길'
세조가 마음병 고친 '법천사'
  • 등록 2021-02-19 오전 8:00:00

    수정 2021-02-19 오전 8:00:00

속리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법주사까지 가는 오리숲길


[보은(충북)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쪼르륵, 쪼르륵’. 속리산 솔향기를 안고 흘러내리는 달천. 엄동설한에 꽁꽁 얼었던 계곡물은 두꺼운 얼음 사이를 비집고 흐르고 있다. 미룸미룸하던 동장군이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봄이 슬며시 파고들어서다. 충북 보은에서 만난 봄이 오는 소리다. 보은은 조선 7대 왕이었던 세조와 인연이 깊은 고장이다. 대궐터·연걸이 소나무, 목욕소·가르침 바위, 미륵댕이, 북바위, 복천암, 은구석, 말티고개, 상환암, 진터 등. 모두 세조와 연관된 지명들이다. 그만큼 세조는 속리산을 자주 찾았다. 그중 세번의 행차가 유명하다. 세조가 법천암에 거주하던 신미대사를 찾아 훈민정음 보급에 대해 논의했다는 것과, 고려 태조인 왕건을 흠모한 세조가 속리산을 가던 중 진흙으로 된 말티재 길에 얇은 돌을 깔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번째는 말년에 피부병에 걸린 세조가 요양차 속리산을 찾아 병을 고쳤다는 것이다. 기나긴 전염병에 속병 난 이들이 마음을 씻고 오기 좋은 장소다.

속리산시외버스터미널 뒤편 오리숲길 가는길에는 벽화가 양옆으로 그려져 있다.


속세를 벗어나 불법의 땅으로 들어서다

이번 여정은 600여년 전, 세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다. 먼저, 속리산 국립공원 초입의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을 만난다.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가지를 번쩍 들어 임금이 탄 가마를 안전하게 통과시켰다는 소나무다.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이품 벼슬을 하사했다. 한때는 삼각의 완벽한 수형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한쪽 면이 병들어 온전치 않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속리산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골목 사이로 들어선다. 골목 양옆으로 재미있는 벽화에 눈길을 주다 보면 어느새 ‘오리숲길’. 여기서부터 법주사까지 거리가 5리(2km)라 지은 이름이다. 그만큼 이 숲의 역사도 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길의 나이만큼이나 늙어 보이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아직 창창하다는 듯 양옆으로 서 있다. 그 사이로 눈을 즐겁게 하는 조각품들이 숨겨져 있는데,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국보인 법주사 팔상전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드는 길은 호젓하다. 전나무와 참나무가 어울린 숲길이 발걸음을 늦춘다. 숲이 주는 피톤치드로 속세의 때를 씻겨낼 무렵, 법주사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신라 진흥왕 때 불법을 구하러 천축국으로 건너간 의신조사가 경전을 얻어 귀국해 창건했다는 1500년 역사의 사찰이다. 법주사는 ‘보물사찰’로도 불린다. 그만큼 문화재가 많다는 뜻. 마당 앞 높이 33m의 웅장한 금동미륵대불이 가장 먼저 눈길이 가지만, 목탑형식으로 지은 팔상전(국보 55호)과 팔상전 뒤편의 쌍사자 석등(국보 5호)에 더 마음이 간다.



옛날 3000여명의 승려들이 먹을 밥을 지었다는 ‘철확’과 바위에 새긴 ‘마애여래의상’, 수정봉에 굴러떨어졌다는 ‘추래암’ 등 독특한 볼거리도 많다. 그중에서 가는 발길을 붙잡은 것은 고통스러운 듯 그릇을 받쳐든 모습의 희견보살상. 몸과 뼈를 태우면서 아미타불 앞에 공양하는 보살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강한 의지를 배양하라’는 뜻에서 세운 것이다. 지금같은 어지러운 세상에 이 초라한 불상이 더 새삼스러워 보이는 이유다.

세조길 입구에 있는 저수지를 따라 길게 덱이 깔려 있다


속세의 때를 씻어내고, 마음의 병을 고치다

법주사를 나와 세조길 탐방에 나선다. 법주사 삼거리에서 상수원지~탈골암 입구~목욕소~세심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세조가 1464년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 속리산 복천암을 찾았다던 일을 바탕으로 만든 길이다. 길은 문장대 등으로 가던 옛 등산로와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하며 세심정까지 간다. 거리는 2.5km 정도다. 왕복 5km에 달하는 산길이지만, 급한 오르막이 없어 산책하듯 설렁설렁 다녀올 수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옛 법주사 터다. 옛 법주사의 흔적 일부가 남아 있는 곳이다. 법주사는 한때 약 3000명의 승려가 머물렀던 대가람. 임진왜란을 겪으며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됐고 현재는 건물터만 남았다. 신미대사를 찾아 복천암으로 향하던 세조는 이곳에서 승려들과 담소를 나누며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고 한다. 옛 법주사터 바로 옆은 사람 눈썹을 닮은 ‘눈썹바위’다. 눈썹바위 바로 위는 상수원이 있는 저수지다. 세조길 여러 구간 가운데 최고의 풍경을 선사하는 곳이다. 맑은 계곡수와 숲이 멋들어지게 어울렸고 이를 저수지가 또 한 번 그대로 비춰내고 있다.

속리산 세조길과 나란히 하는 달천에는 이미 봄이 살며시 파고 들었다.


상수원을 나와 도착한 곳은 ‘목욕소’. 세조가 이곳에서 목욕하다가 월광태자를 만나 피부병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목욕소 바로 위는 세심정이다. 세심정 휴게소에서 오른쪽 상고암 방향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면 두 개의 돌 절구와 만난다. 13~14세기까지 실제 사용됐던 돌절구다. 계곡수를 이용해 물레방아 형태로 곡식을 빻았다고 한다. 돌 절구 너머로 너럭바위가 있고 기암 사이사이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폭포들이 흘러내린다. 이곳이 바로 세심정이다. 목욕소를 지나 세심정 입구에서 세조길이 끝난다.

세심정휴게소를 거쳐 이뭣고다리를 건너면 복천암으로 들어선다. 복천암은 세조가 마음의 병을 고친 곳으로 알려졌다. 사흘 동안 기도하고 신미대사의 설법을 들은 뒤 복천(福泉)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복천을 마셔본다. 달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왠지 복 받을 거 같아 벌컥벌컥 들이켠다.

이후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친 김에 문장대에 오른다. 좀 더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복천암 입구 오른쪽으로 난 데크를 따라 올라가자. 이정표도 없는 이 길이 복천암의 숨은 보물이다. 설렁설렁 이어진 오솔길을 10분쯤 오르면 고갯마루에 이르는데, 여기에 신미대사와 그의 제자 수암화상의 승탑이 있다. 승탑 뒤 소나무 사이로 속리산의 우람한 바위 능선이 보인다.

세조가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 여러번 찾아간 복천암


여행메모

△먹거리= 속리산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는 산채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많다. 충북 보은을 대표하는 음식은 약초산채정식이다. 산이 깊고 땅의 기운이 정결해 온갖 기기묘묘한 약초가 많아서다, 이곳의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무공해로 손수 재배한 버섯과 채소류 등 무려 50여 가지가 한 상에 차려지는 정식은 속리산만의 별미다. 맛과 영양, 그리고 훈훈한 인심까지 더하면 보약이 따로 없을 정도다. 한 젓가락씩 집어 꼭꼭 씹어 가며 향기를 음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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