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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여덟 개로 쪼개진 창문 너머 풍광이 바뀐다. 창틀에 걸친 커다란 가로수 위로 비가 내리고 눈발도 흩날린다. 가끔 지나치는 사람들이 하루의 어느 때를 말해주고, 물든 잎사귀가 계절을 말해준다. 풍경에 켜켜이 쌓인 시간, 그것이 모두 열 개다.
한국화가 유근택(47·성신여대 교수)의 수묵화엔 깊은 산과 물이 없다. 대신 현실의 일상이 있다. 되레 친숙하게 여겨질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다. 낯설다. 일상의 삶, 소멸, 순환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폭 안에 자리잡은 사물은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고 실제 크기와도 차이가 난다. 거대한 코끼리가 침실 한 가운데 들어와 있기도 하고, 거실엔 나무가 자란다. 가히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두고 작가는 “주변 풍경에 무뎌지기 전 그것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낀 섬광과 같은 에너지를 왜곡·변형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이 세계가 기묘함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무엇’이라 생각한다. 산수화를 그리기 위해 산에 가는 것보다 오히려 내가 만질 수 있고 나와 호흡할 수 있는 주변의 것들에서 세상의 놀라움이 교차한다.” 작가의 말이다. 그러니 굳이 산과 물을 따로 말하고 그려낼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12월 9일까지. 02-2287-3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