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이어 “먼 곳에 출장을 떠나셔도 항상 집에 연락을 빼놓지 않았다. 아마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혼자 갈 수 없어 그 긴 고통의 세월을 병석에서 버티셨나 보다”라며 “‘비워라. 그럼 다시 채워준다’는 철학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평생 자신과 가족과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완벽한 분은 아니었다”면서도 “자신을 숨기거나 속이지 않으셨다. 당신 스스로를 보통 사람이라 칭했고, 한 사람의 의인보다 여러 명 보통 사람의 힘을 더 믿었다”라고 말했다.
노 이사장은 이날 장문의 ‘아버님 전상서’를 통해서도 “군인·정치인·대통령을 거쳐 일반시민으로 돌아오자마자 무거운 사법의 심판으로 영어의 몸이 될 수밖에 없었다”며 “그 후 큰 병을 얻어 긴 시간 병석에 누워 고통스럽게 지냈고, 결국 영광과 상처가 뒤섞인 파란 많은 생을 마감했다”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희생과 상처를 가슴 아파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자 했다”라며 “이 시대의 과오는 모두 당신이 짊어지고 갈 테니 미래세대는 우리 역사를 따뜻한 눈으로 봐주기를 간절히 원하셨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