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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행동 죄송"…'학폭 가해자'의 사과문은 왜 다 비슷비슷할까

연예·스포츠계 넘어 사회 전반에 '학폭 미투' 번져
가해자 기억 '가물'…반면 피해자는 '구체적'
심리 전문가 "가해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 등록 2021-02-19 오전 8:30:27

    수정 2021-02-19 오전 8:42:42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어린 마음으로 힘든 기억과 상처를 갖도록 언행을 했다는 점 깊이 사죄드립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렇게 자필로 전합니다”(배구선수 이다영)

“저의 어린 시절 철없는 행동이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으셨다는 말에 가슴이 찢어지게 후회스럽고 저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럽습니다”(가수 진달래)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 맞습니다. 제아무리 어리고 철없던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행사하고 그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드렸다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배구선수 송명근)

(그래픽= 이미나 기자)


‘학폭 미투’ 일파만파…사과문에 드러난 공통점

스포츠·연예계의 ‘학교폭력 미투’ 파문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가해자들이 일제히 사과문을 내며 반성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의 폭로와 가해자의 사과문 사이의 ‘구체성’에 큰 차이가 나 양쪽의 심리 기제 작동 방식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1월 TV조선 ‘미스트롯2’에 출연한 가수 진달래(본명 김은지)씨가 시작이었다. 진씨는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오디션 경연 도중 해당 방송해서 하차했다. 이후 지난 10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자 프로배구 선수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폭로되면서 스포츠계를 넘어 사회 전 분야로 확산했다.

이어 남자 프로배구 선수 송명근, 심경섭씨도 지난 13일 학교폭력 가해자임을 인정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15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현직 경찰로부터 학창시절에 학교 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학폭 미투’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논란이 확산하자 가해자들은 일제히 사과의 뜻을 전했다. 가해자의 사과문에는 공통적으로 구체적인 사건 경위가 흐릿한 반면, 피해자의 폭로는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특히 피해자는 정확한 날짜에 가해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씨 자매의 학교폭력 피해자는 “화이팅을 안 했다고 입을 맞아 안경이 날아갔다”고 언급했다. 심씨와 송씨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이도 “1분 지각했다고 창고에서 폭행했고, 고환을 파열시킨 후 ‘터진 놈’이라고 놀렸다”고 구체적 사실을 알렸다.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학폭)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왼쪽)·이다영.(사진=연합뉴스)


“가해자·피해자 간 기억 차이 발생”…진정성 있는 사과 어려워

심리 전문가는 이와 같은 상황을 ‘구성적 기억’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성적 기억은 회상 과정에서 불완전한 기억에 추리를 첨가하는 등 정보의 빈 곳을 채워 기억하려는 경향을 일컫는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 간 기억의 간극이 발생한다는 것.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는 충격과 고통으로 그때의 기억을 확대하고 가해자는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축소하는데, 살아가면서 불완전한 기억을 회상하면서 스스로 구성하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흐르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기억의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부정적인 기억’도 피해자, 가해자 간 간극을 벌린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이 사람의 기억 속에 더 머물기 마련인데, 피해자는 심리적·육체적 고통과 동반한 부정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이 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가해 행위가 부정적인 기억이 아니기 때문에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상대적으로 기억을 못 한다”고 정 교수는 덧붙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사건을 두고 기억을 달리하기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고 사과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자는 제대로 기억을 못할 뿐더러 본능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과문에 공통적으로 적힌 ‘철없는’, ‘어린 마음’ 같은 문구에 대해 정 교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 자기를 보호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며 “일반적으로 이런 욕구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라는 해석을 내놨다.

실제 송씨의 사과문을 본 피해자는 다시 글을 올려 “피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는 느낄 수 없었다. 사고에 대한 사과는 있지만, 그 후 놀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하시길 바란다”고 목소리 높였다.

한편 모호하고 진정성이 결여된 사과 탓에 가해자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스포츠계 학교폭력 미투’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오차범위 95% 신뢰 수준 ±4.4%포인트), 응답자의 약 70.1%가 ‘가해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답했다.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10일 각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학교폭력 피해자들에게 자필로 쓴 사과문을 올렸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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